도로 가에 라운드 어바웃 표지판이 나타나면 숫자를 세어가며 몇 번 째에서 진입할 지 세사람이 선창을 했다.
그렇게 벌벌 떨면서 첫번째로 찾아 간 곳은 옥스포드 근교 우드스톡에 있는 블렌하임 궁전.
블렌하임 궁전 (Blenheim Palace)
초대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이1704년오스트리아의 블렌하임에서 프랑스와 바이에른 연합군을 대파한 전공을 치하 하기 위해 앤 여왕이 대저택을 지어준 뒤 블레넘 궁전이라 칭했다.
영국 바로크 건물의 대표작이며, 영국 수상인 윈스턴 처칠이 태어나고 1965년에 사망한 후 정원 남단의 묘지에 묻혔다.
블레넘 궁전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있는 예술 작품과 타피스트리 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대로 장자 세습으로 물려 내려오다. 8대 공작인 처칠의 큰 아버지가 물려 받았다.
1874년 형의 초청을 받은 처칠부모가 사냥을 즐기다 그의 어머니가 조산기미로 궁으로 돌아와 현관 가까운 방에서 출산을 했다.
큰 아버지 집에서 출생을 했는데 훗날 처칠이 유명인사가 되면서 이 집은 문턱이 닳도록 관광객이 드나들게 되었다.
이 방에는 처칠이 그린 어머니 초상화가 걸려 있고 자수가 놓인 아기 옷이 전시 되었다.
" 여긴 말버러 가문의 블레넘 궁이요. 여기와서 왜 처칠을 찾는거요 ? 당연히 이 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요?
그의 큰 아버지는 여왕이 하사한 궁에서 우연히 태어난 친척 아이가 말버러 공작 가문의 모든 영광을 독차지 해버린 꼴이 되었다고 마뜩찮아 했다는 후문이 있다.
네가 블레넘 궁을 찾은 까닭은 처칠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이다.
그는 자랑스러운 영국인 1위로 뽑힌 사람이다.
국민들이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 베스 여왕, 대영제국과 바꾸지 않겠다던 세익스피어도 제치고 그를 선택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처칠이 그의 아내를 만난 장소를 기념하는 기념비
"당신의 거친 말과 위압적인 태도 때문에 당신은 동료와 아랫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위험이 있어요. 당신의 보좌관들은 선생님 앞에 선 학생들처럼 행동하고 무슨 일이든 그냥 받아넘기기로 합의한 것 같아요. 그리고 고위 관료들은 당신이 무조건 무시하고 보니까 더 이상 아이디어를 제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요.… 예전에 국민들이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했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처칠의 아내 클레먼타인의 편지)
처칠은 뼈 속까지 귀족적인 사람이었지만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공휴일에도 전시내각을 소집했고, 새벽에 보좌관들을 모으기도 했다.
처칠은 아랫사람의 편의나 감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거침없는 독설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그와 함께 일했고, 그 경험을 자랑스럽게 회고했으며,
그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대중들은 그가 거친 말과 위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대중과 함께 경험을 나누려 애쓰고,
공감하며 마음 아파했던 처칠의 진심을 읽었을 것이다.
그들이 처칠을 존경하는 이유는 일을 많이 한 것이 아니라,‘왜 그렇게 일을 했는가’를 알았기 때문이다.
처칠 동상 앞의 작은 정원에 핀 센토레아, 양귀비, 마가렛.......
히틀러를 상대한 일촉즉발의 세계대전의 전시 상황에도 V자를 그리며 용기를 북돋우고,
농담과 유쾌한 입담을 놀리던 처칠은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다.
순탄치 못한 유년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라지만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에 집중했다.
그의 아내가 부드러운 영국 신사와 크루즈 여행을 떠났을 때도 그림을 그렸으며 ,
자식들이 죽어나가는 불행한 가족사도 그림을 그리며 견뎌냈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연출한 사람이다.
전시 중에 대중 앞에 설 때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든 것도 군복 스타일의 의상을 디자인 한 것도
모두 그가 의도한 자신만의 개성이다.
나는 그가 한 수 많은 명언중에 <책을 읽는 습관이 당신의 운명을 좌우 한다> 를 일찌기 마음에 담아 두었다.
제일 마지막 관람객으로 남아 찬찬히 궁을 돌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에 사는 사람들도 인간적인 슬픔과 아픔은 피해가지 못했다.
오두막에 살아도 가족이 화목한 것이 최고의 행복인 것을.
보라색 점 찍은 곳이 우리가 다녔던 마을
우드스톡에서 코츠월드로 향했다. 코츠월드는 영국인들 마음의 고향이다.
이번 영국 여행의 목표는 코츠월드다.
코츠월드는 13~14세기에 양모산업으로 번영하던 지역이다. 런던 서쪽으로 6개 주에 걸쳐 약 200개의 마을이 있다.
마을들은 가옥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고 돌담과 집을 지은 석회석은 북쪽 지역은 진한 노란색을 띠고, 남쪽으로 갈수록 검은 빛깔이 강해진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은 예이트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며, 영화 장면 중 일부를 코츠월드에서 촬영했다.
실내 장식 디자이너 로라 애슐리도 코츠 월드의 자연 풍광에서 감성을 키우며 자랐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섀도우랜드> 등도 코츠월드를 배경으로 했다. 코츠월드와 인연이 깊은 유명인들도 많다.
찰스 왕자, 앤 공주 같은 왕족부터 케이트 윈슬렛, 휴 그란트 , 모델 케이트 모스,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 화가 데미안 허스트 들이 코츠월드에 산다.
영국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가장 살고싶어하는 코츠월드는 자연 환경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들이 코츠월드의 구릉지대를 달릴 때는 이미 가을이 시작 되고 있었다.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영국을 정복하면서 가지고 온 양들을 코츠월드의 구릉지대에 풀어 놓았다.
최고의 목초지에서 건강하게 자란 양들이 영국의 부를 축적해 주었다.
코츠월드 동서남북으로 유명 관광지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렛 포드 어펀 에이본에서 로마인들이 세운 온천도시 바스,제인 오스틴의 흔적을 따라 남북 60㎞ 둘레 안에 있는 마을들을 살펴 볼 것이다.
마을의 집집마다 돌담을 따라 아름다운 정원이 이어지고 골동품 가게와 공예품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다리가 아프면 낡은 나무 벤치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 된다.
무사고로 숙소에 도착한 기념 컷.
'버튼 온 더 워터에 있다는 마우스 트랩 인 . 베아트리스 포터의 삽화를 떠올리는 생쥐 간판이 귀엽다.
마우스 트랩이라는 간판 답게 실내 인테리어는 온통 생쥐 일색.
1층 레스토랑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환담을 나누는 정겨운 분위기.
남동생과 아름이도 좌측 통행의 악몽에서 벗어나 시원한 생맥주로 피로를 풀었다.
영국의 시골집들은 달력속 풍경화 같다. 눈길 가는데 마다 그림이다.
꽃들은 어찌나 빛깔이 곱던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집집마다 정원에 온실이 있고, 개성있게 정원을 가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치 정원 가꾸기 경연 대회를 하는 것 같다.
개들도 낯선 이방인을 반기며 꼬리를 흔든다.
골목의 낮은 담장들을 기웃거리며 집구경을 하는 것도 재미있다.
영국 사람들의 가정교육은 가드닝으로 시작한다. 마을마다 가드닝 센터가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내가 알기로 영국 사람들의 꽃 사랑은 세계 최고다. 자신을 위해 꽃을 가꾸지만 창가에 꽃을 꽃아두고 행잉 바스켓을 걸어 두는 것은 이웃에 대한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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