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다 반짝 개기에 우산을 두고 나왔더니 종일 비가 부슬부슬.
리옹의 문화 아이콘 중 하나로 벽화를 꼽을 수 있는데 약 100여 개가 넘는 벽화들이 있다.
리옹에서 발간한 출판물을 세세하게 그린 벽화가 있는 건물
리옹 출신의 유명인사들을 총망라해 놓은 대형 벽화가 있는 건물.
리옹의 벽화들은 ‘떼 드라 크레아씨옹’이라는 벽화전문예술팀이 완성했다.
비 때문에 론강 주변의 벽화 구경은 포기 했다.
버스에서 부터 '푸쉬 뒤 까날 '을 알려주겠다는 남자를 따라 온 곳은 리옹의 최대 재래시장이었다.
너무나 친절한 그 덕분에 서울의 경동 시장 같은 재래시장 구경을 했다.
이곳에서 손강을 따라 30여분 걸어서 리옹의 상설 벼룩시장을 찾아갔다.
우산도 없이 아름이 비옷 뒤집어 쓰고 버스도 끊긴 인적도 없는 길을 걸어갔다.
어느 집 담장에 흐드러진 시계초(패션 플라워) 덩굴.
꽃이나 줄기에서 체취한 약성분으로 2차 대전 중에 독일군인들이 '자백약"으로 사용했다고.
꽃이 진 다음에 맺히는 과육 패션 푸르츠는 쥬스,젤리 샤벳, 아이스크림으로 이용.
궂은 날씨 탓에 상인들이 노점을 접어버렸다.
자기 점포가 있는 상인들만 문을 열었다.
아름이랑 인형을 찾아서 한 바퀴 휘둘러 본 다음, 한 집 한 집 더터가기 시작 했다.
이 집엔 A급 엔틱 리넨들이 제법 있었는데 가격이 비샀다.
이 집엔 모 음대 교수가 즐겨입는 푸대 자루 같은 19세기 리넨 의류들이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도 영국인 못지 않게 엔틱을 좋아한다.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득템을 한 물건들을 들고 갔다.
석회수가 섞인 손강의 물빛.
석회수 탓에 프랑스 에비앙 물맛은 찝찔하다. 삼다수 생각이 간절하다.
우리나라 좋은 물 놔두고 에비앙을 사먹는 사람들 심리를 모르겠다.
벨쿠르 광장(Place Bellecour)은 리옹 관광의 출발지기도 하다.
광장 중앙에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서 있다.
입구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 여행정보를 얻기에 유용하다.
벨쿠르 광장 후미진 곳에 셍떽쥐베리와 어린왕자 동상이 있다.
“내 몸은 버려야 할 낡은 껍데기 같은 거야. 껍데기를 버린다고 슬퍼할 건 없어.”
어린 왕자의 작별 인사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 생텍쥐페리의 최후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1944년 7월 31일 오전 8시 45분 P38 라이트닝 비행기로 정찰 비행에 나섰다가 끝내 귀환하지 않았다.
비행복을 입은 셍 떽쥐베리 곁에 붙어선 어린왕자가 “아저씨, 양 한 마리만 그려줘”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2000년 생텍쥐페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리옹시가 이 거리에 작가의 이름을 붙이고 동상을 세웠다.
리옹 공항은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으로 개명됐다.
“우리가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면, 그는 산 자보다 더 강하다”고 쓴 생텍쥐페리의 말을 고향이 잊지않은 것이다.
1900년 6월 29일 리옹에서 태어나
1944년 7월 31일 프랑스를 위해 사망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야….”
동상에 적혀 있는 글귀 옆에,
중년 여자가 고인이 된 남편 사진을 붙여 놓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녀와 동병상련이라 핸드폰을 달래 그녀 사진도 찍어주었다.
1998년 마르세유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처놓은 그물에서 '콘수엘로'라고 새겨진 팔찌가 걸려나왔다.
몇 년 뒤에 같은 해역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탓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 잔해가 수거되었다.
2008년 3월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 조종사가 자신이 생떽쥐 베리가 타고 있던 비행기를 격추했다고 고백했다.
“마음이 슬플 때는 지는 해를 보는 게 좋아…”라던 어린왕자는 날마다 지는 해를 바라 볼테니 더이상 슬프지 않을 것이다.
미니어쳐& 씨네마 뮤지엄
전시된 작품을 사진 찍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 정도 수준의 작품들을 소장하려면 어머무시한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미니어처 . 디테일이 .............
영화촬영 소품과 로봇 인형들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의 흥미를 돋우고
파트리크 쥐스킨트 의 원작 소설 <향수>의 장면연출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 『향수』,
세상의 모든 냄새를 분별하는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가 그루누이. 정작 그 자신에게는 체취가 없다. 이 사실은 그에게 ‘향’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낳게 한다.
그르누이는 천재적이면서 혐오스러운 탐미주의자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르누이가 세상에 없는 사랑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며 집착하듯
우리도 부귀와 영화라는 향수를 쫓아 목메이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던 책.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 진열된 소품 하나하나가 값나가는 엔틱었다. 저 많은 엔틱을 수집한 능력도 놀랍고 자본을 끌어들인 수완도 부럽고.
파트리크 쥐스킨트
전세계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쥐스킨트는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나 암바흐에서 성장했고 뮌헨 대학과 엑상 프로방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편의 단편을 썼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가 〈희곡이자 문학 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둘기, 『좀머 씨 이야기』 등의 중·장편 소설과, 단편집 『깊이에의 강요』 등을
발표하면서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전시장 안을 채운 미니어쳐 작품과 씨네마 소품들은 퀼리티 높은 고가의 작품들이었다.
그만한 물건을 수집하고 소장하려면 막강한 자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능력자 앞에서 기가 죽어 심란해진 마음을 꽃으로 달랬다.
가다뉴 거리를 향해 걷다보면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리옹 스타일의 메뉴를 선보이는 식당들은 ‘부숑(Bouchon)’이라고 한다.
‘리옹식’ 샐러드인 살라드 리요네즈,소시지의 일종인 소씨쏭 등 특색 요리 전문점인 셈이다.
프랑스요리의 거장 폴 보뀌즈의 고향이기도 한 리옹에는 무려 1,500여개가 넘는 레스토랑과 61명의 스타 쉐프가 포진, ‘미식 도시’의 명성을 뒷받침한다.
가다뉴 박물관 (꼭두각시인형 박물관)
가다뉴 저택을 박물관의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큰 부를 모은 가다뉴(Gadagne) 형제가 살았던 16세기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로
1920년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가다뉴 박물관은 1921년 리옹 역사박물관으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1950년에 세계 꼭두각시 인형 박물관(Musée des marionnettes du monde)과 합쳐졌다.
우아한 르네상스 실내 장식이 돋보이는 내부에 리옹 역사 유물 8만여 개와 꼭두각시 인형 2천여 종을 전시하고 있다.
지도, 가구, 미술품, 금은 세공품, 전통 생활용품, 사진, 종교 의례품, 의류 등의 다양한 소장품은 17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리옹의 발전과정과 독특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
1808년 리옹에서 만들어진 기뇰(Guignol)이라 불리는 프랑스 손 인형극용 도구와 공연 포스터,
인형제조업자 로랑 무르게(Laurent Mourguet)
‘기뇰(Guignol)’이란 끈이 아닌 손으로 조종하는 인형 또는 그 인형을 등장시키는 인형극으로
리옹 출신의 인형제조업자 로랑 무르게가 최초로 고안,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로랑 무르게는 리옹산 실크를 이용해 인형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랑 무르게 후손들이 운영하는 기뇰 박물관
앞서 관람했던 미니어쳐 & 씨네마 박물관과 꼭두각시 인형 박물관 과 비교가 될 정도로 열악한 전시 환경이다.
기뇰 인형 개발자로 연기자로 평생을 보낸 그는 입담이 좋은 사람었고,
기뇰 인형을 빌어 정치 풍자로 구경꾼들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고 한다.
재담꾼과 함께 했던 기뇰 인형들은 이제 박제 된 한낱 전시물이 되어 이국의 여행객들을 무심히 바라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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