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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나들이

894회 샤갈의 뮤즈

멀리 가는 향기 2018. 5. 28. 11:24



화상전문 병원 베스티안 재단 사회복지사업본부는 

의료비 지원 사업,화상 인식 개선 사업,화상 예방 교육,멘토링 사업, 희망 사업으로 사회공헌을  한다.


5월 9일 ,작년에 이어 화상환자들의 멘토링 아이앤 맘 동화교육 사전 미팅을 했다.

김혜욱 본부장과 민보경 주임이 미팅 장소를 샤갈 전시장으로 선택 했다,



훈남 본부장은 자기 어머니와 내가 동갑이라고 더 살뜰이 챙긴다.

역으로 마중 나오고 배웅 할 뿐더러, 핸드백 들어주기, 생선 가시 발라  밥 위에 올려주기 등  매번 감동을 시킨다.



강의전에 자료 받아 세팅하고  출력하고 참여자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살뜰이 챙기는 보경 씨

행여 내가  강연일정 을 놓칠까봐 미리미리 체크 해주는 상냥하고 사랑스런 조교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Mark Chagall-


샤갈(Marc Chagall) 1889~1985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유대계 러시아 화가, 프랑스 화가이자 미국 화가다.

 

샤갈은 놀랄 만한 직감으로 위험이 닥치기 직전 훌쩍 떠나곤 했다. 직감 덕분에 유대인 학살과 스탈린의 대숙청, 나치 강제수용소를 피할 수 있었다. 샤갈은 거의 백 세까지 살며 전쟁과 잔학, 유혈로 가득 찬 한 세기를 보냈다.


샤갈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도시에 불이 났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 거리 여기저기로 요람을 들고 다녔다. "어쩌면 이 때문에 항상 불안을 느끼며 방랑벽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샤갈이 말했다.

 

두 번째 악재는 1917년 러시아 혁명 발발 이후 샤갈은 벨라루스 시 예술인민위원에 임명되었다. 그는 비텝스크의 미술학교를 감독하고 혁명 축제들을 조직하는 일을 맡았다.

"검은 사각형" 그림으로 유명한 말레비치가 볼셰비키 당국을 설득하여 샤갈이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다고 믿게 했다. 본인이 예술인민위원이 되고 싶은 나머지 경쟁자를 밀어내려 했을 뿐이다.

프랑스로 떠난 몇 년 후 소련 당국이 화가와 시인, 영화감독들을 탄압 하기 시작했다

떠나지 않았더라면 샤갈도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19412차 세계대전 발발로 프랑스도 안전허지 못했다.

샤갈은 독일군이 들이닥치기 바로 직전 탈출했다.

1933년에 나치당원들은 샤갈의 작품들을 '퇴폐 예술'과 함께 불태운 바 있기 때문이다.

 

샤갈은 뉴욕으로 떠났지만 이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살았다.

 

샤갈은 어렸을 때 집시 여자에게서 자신이 하늘을 날다가' 사망할 거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하늘을 날며' 살았다.

샤갈의 그림들에서는 연인들과 시골 유대인들, 심지어 물고기들까지 모두가 날아다닌다. 바이올린을 켜며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



 

갈이 22세 때 고향 여자친구 집에 갔다가 13살 벨라를 처음 만났다.


샤갈과 벨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돌연 나는 느꼈다 벨라 만이 나의 아내라는 것을 "

9세 연하의 밸라는 보석상을 하는 집 막내로 태어났다.

모스크바에서 배우 수업을 받던 벨라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부모들로 부터 환영 받지 못하는 결혼을 했다.


내성적이고 말까지 더듬고 종종 간질 발작을 일으켰던 가난뱅이 샤걀에게  벨라는 어머니같이 포용력을 지닌 소중한 반려였다. 


자신의 뮤즈 벨라를 떠나 보낸 샤갈이 그녀의 묘비를 안고 오열한다.

평생 한 여자 만 바라보고 산 남자의 가슴이 얼마나 헛헛할지 나는 알겠다.

(우리가 익히 아는 화가들은 숱한 염문으로 아내 가슴에 피멍이 들게 했지만 영원한 로멘티스트들은 몇 안 된다)

천사처럼 샤걀의 머리 위를 나는  딸 '이다'


메니저 역할을 하던 딸 이다는  아버지의 남은 생이  고독하지 않게  '바바'를소개  재혼 시켰다.

마지막 인생 30년은  제2의 벨라 에게 영감을 얻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할 수있었다.


샤갈과 벨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바바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25세 연하  발렌티나 브로스키




'평생 불운이 따라 다닌 사나이' 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천만에,

그는 행운을 따라잡은 열정의 사나이다.


이 날

내가 좋아하는 샤갈을 마음으로 느낀 시간



나는 '내 마음 안에 들인 이'와 '내 마음 밖의 이'들로 구분하며 살기에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누가 아군 인지 적군인지는 직감 으로 안다.


내 마음 안에 들인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건강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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