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농부일기

996회 코로나 19 와중에

멀리 가는 향기 2020. 3. 8. 13:59


해는 건축 일로 바쁠 테니  병원 다닐 일은 만들지 말자고 작정을 했다.

 

1월 초  미루고 미루던 위, 대장 내시경을 한 꺼번에 수면으로 해치웠다.

다행히 대장이 깨끗했고  위는 염증 소견이 있는데 매운 음식을 먹지 말라는 조언 정도,

평소에 소화기능이 안좋아 자극적이고 몸에 해롭다는 음식, 가공한 인스턴트 식품은 멀리했다.


동생이 임플란트 시술을 하게 되어서  함께 하기로 했다. 산부인과 보다 무서운게 치과다.

원주에 있는 치과를 전부 서치해서 믿음이 가는 치과를 찾았다.

원장이 100대 명의로 꼽히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엑스레이 찍을 때도 음악이 흘러 마음을 편하게 하고 수술 기자재들도 최신형이다.

 시술을 할 때 간호사 한 명은 원장 보조를 하고 한 명은 과정을 기록했다.


옛날에는 어떻게 치아 치료를  했을까?

상류층은  이발소 응접실에서 이발외과의에게 치료를 받았고,

하층민은  시골장터에서 떠돌이 발치사에게 이를 뽑았다.

그나마  장이 서지 않는 오지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대장장이에세 달려갔다.


대장장이는 뛰어난 손재주와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었고, 집게 사용 능력자다. 

필요한 기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제작할 수  있어 발치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대장장이의 야매진료는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다고한다.


프랑스 리옹 의 강가에도 야매 발치사가 있었는데 발치사 곁에서 밥벌이를 하는 재담가가 있었다..



 

인형제조업자 로랑 무르게(Laurent Mourguet)

 

리옹은 실크섬유산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산업혁명이후 리옹의 섬유산업은 면직물 대량생산에  밀려  방적공장 직공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로랑무르게는  가지고 있던 옷감으로 손가락 인형극  ‘기뇰(Guignol)인형을 만들어 길거리 공연을 했다.


그는  떠돌이 발치사  곁에서 겁에 질린 환자들을 재담으로 웃겼다고 한다.


워낙에 입담이 좋은 사람었고, 기뇰 인형을 빌어 정치 풍자로 구경꾼들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고 한다.



로랑 무르게 후손들이 운영하는 기뇰 박물관


재담꾼과 함께 했던 기뇰 인형들은 이제 박제 된 한낱 전시물이 되어 이국의 여행객들을 무심히 바라 볼 뿐이었다.


.......................................................................................... 


겨우내 기침이 낫지 않아 고생을 했다. (환절기 심지어 여름에도 기침을 했었다)

병원약으로도 낫지 않아 기침에 좋다는 무엿을 만들었다.                                    


서리맞은 무 우리 몸 어디에 좋은가?

인산 선생의 처방전 중에 무엿은 첫 손에 꼽힌다고 한다.


가래 기침 천식 해수 등 기관지와 폐의 질병을 다스리다.

면역력 증강시키고 몸속에 쌓인 독을 풀어 준다.

가래를 삭여준다.

소화가 잘 되게 하고 위장을 보호해준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원기를 보해준다.

무엿을 장기 복용하여 기관지염이나 폐암을 고쳤다는 사례가 있다.


찹쌀을 불려 고두밥을 짓고 엿기름과 물을 섞어 전기 밥솥에 보온상태로 4-8시간 삭힌다.

삭힌 것을 양파망에 넣고 단국물만 짜낸다.

배 ,생강  대추 저민 것을  팔팔 끓인 물에

무는 굵게 채썰어  남비에 넣는다.



삭인 엿기름 국물을 냄비에 넣고 푹 곤다.

중불로 끓이다가  농도가 짙어지도록 저으면서 약불로 졸인다. 



도라지가 들어갔는데도 맛이 있다.  해마다 김장 무 남으면 상비약으로 만들 생각.


내가 잦은 기침을 하자 농협 직원이 이비인후과를 소개 해줬다.

이 나이 먹도록 감기 걸리면 내과로 갔지  이비인후과에 갈 생각도 못했다. 

이비인후과에서 코에 물혹이 있어 기침이 나는 거라며 축농증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2월 6일 ,26일 두 차례 수술을 하고 나니 원주에도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했다.

그놈의 코로나 19 때문에 병원 출입도  걱정스러웠다.


코로나 와중에도 3월 2일 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살림집 벽 쪽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세멘을 들이 부었다. 며칠 양생하는 동안 쉬다가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석축을 한 단 걷어 내기로 해서 싹이 올라오는 수선화를 캐내고

 커다란 방석돌도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방석돌을 소나무 두 그루 아래 두었다.

한 여름 쉽터가 되고 찻자리가 될터이다.


건축 현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스키장 인공 눈들이 3월인데도 안 녹은 걸 보았다.


집에 오니 엄니가  코딱지 나물과 냉이를 캐오셨단다.  돌나물은 옮겨 심고 뜯어 먹는다고 뿌리 째 캐오셨다.

온 몸이 쑤시고 아파서 잠도 못 주무시는 양반이 나물을 캐다보면 아픈 것도 잊으시니 다행이다.

엄니는 꿈에 당신 몸을 수술하셨단다.  얼마나 쑤시고 아팠으면 .



'"이것이 보약이여. 언 땅 속에서 살라고 을매나 애섰것냐. .............

세현이가 나물을 좋아하는데 승환이랑 융이는 나물맛을 모르니까 냅두고 ........"

나물 좋아하는 둘째 동생에게 택배 보내는 김에 편지를 쓰시라 했다.



엄니가 손 편지 쓰신 것은  군대 간 융이에게 쓰고 이 번이  두 번 째다, 며느리 한테도  따로 쓰셨다.


오늘도 낮잠 주무시는 엄니 깨워 나물 캐러 가시라 꼬드겼다.   

나물 캐는 재미에 운동도 하고 세상 근심도 잊으시라고.



'농부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3회 판대리 현장  (0) 2020.04.27
999회 닭장 이야기2   (0) 2020.03.27
989회 닭장 이야기  (0) 2020.01.19
1015회 '벌침'  (0) 2020.01.10
979회 게르 첫 손님  (0) 2019.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