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닭장문에 추로 매달아 놓은 패트병 물이 줄어들어 닭장문이 열린 걸 몰랐다.
열린 문으로 공작 3마리 하고 은계가 나왔다.
공작 2마리는 살살 몰아 넣었는데 은계는 칡덩굴 속으로 숨고, 공작 한 마리는 이웃집 현관 지붕으로 날아 갔다.
배고프면 밑에 놓아둔 모이통으로 내려오겠지 했는데
며칠을 꼼짝 않고 있었다.
잘못 몰다가 날아가 버리면 큰일이라 건물 옥상에서 그물을 내려 포획하려해도
너무 높고 위험해서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나흘 째 되던 날 밤, 11시 가까운 시각에 비가 와서 겨울 날씨였다.
동생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 담요로 덮어 씌워 잡아 오겠다고 했다.
위험하다고 말려도 기어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밑에서 사다리를 잡고 있는데 조마조마했다.
동생도 겁이 나는지 조심조심 올라가서 담요를 덮어 씌우고 공작을 끌어 안았다.
그놈이 버둥거리면 사다리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데 반항을 안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아찔했다.
저렇게 높은데를 올라가서 한 손에 공작을 안고 뒷걸음질로 내려 온 걸 생각하면...
이제 은계를 잡을 차례, 지난 번 탈주해서 잡아들인 것 처럼 상자로 덪을 만들어 놓았다.
지난 번에는 보름 만에 잡았는데 이번에는 어려웠다.
모이와 물을 가져다 두는데 먹은 흔적이 없다.
고양이한테 잡아 먹힌 것 같다고 해서 미련을 버렸으면서도 가끔 모이를 뿌리고 다녔다.
지난해 은계를 소재로 <닭새>라는 단편을 썼는데 작품에서는 자연으로 방생하는 결말을 냈다.
닭들도 봄이라고 경쟁하듯 알을 품었다. 실키 암탉은 알 4개를 제대로 품지 못해 골아버렸다.
청계는 욕심사납게 다른 닭들 알까지 품으려 해서 파란 알만 놔두고 누런 알들은 빼낸다.
판대리 현장에서는 살림집 지을 자리 경사지에 거푸집 짓고 세멘을 들이 부어 축대를 만들었다.
동생이 벽에 다이아몬드 모양 구멍을 세개 뚫어 모양을 냈다.
요 구멍으로 진달래 나무가 가지를 뻗어 고운 얼굴 구경을 시켜줄 거다.
가동 살림집 바닥에 매트 만들고 철근 공사.
나동 건물터에도 철근 작업 .
다동도 철근 작업 시작. 다동 지붕은 흙을 덮어서 정원을 연장하고 높낮이를 다르게 할 요량.
며칠 전 화가 리얼 킴이 옛날 기자촌 집 지을 때 사진을 스캔해서 보냈다.
동생이 처음으로 지은 집인데 현장 감독이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가고 인부들이 속을 썪여서
맘고생을 엄청 했었다.
이번에도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3월 19일 강풍이 불어 판대리 현장의 게르가 주저 앉았다고 했다.
집에서는 닭장 지붕의 비닐이 날아갈 판이라 사다리 타고 올라가 붙들어 매느라 고생 좀 했다.
작년에는 27일에 강풍이 불었는데 올해는 빨랐다.
27일, 전날 밤 비가 내려 현장 일을 접었다.
아침에 동생이 현장에 가본다기에 따라 나섰다. 비 안개에 젖은 마을 풍경이 고즈넉했다.
공사를 하다보면 설계가 변경 되는지라 미리 심어 놓은 식물들을 옮겨주었다.
작약, 제주수선화,가을 선생님이 보낸 상사화는 제자리 찾을 때까지 화분에 두기로 .
현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오크가든 사장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 이웃에서 은계가 돌아다니는 걸 보았다고 전화를 해서 살아있다는 걸 알았는데,
진실이 삼촌이 개 사료주러 갔다가 은계를 보고 어제 밤에 잡아다 화장실에 가둬 놓았다고 했다.
한달 하고 엿새만에 잡힌 겁쟁이 은계는 제대로 못 먹어서 살이 빠지고 병이 나서 한 쪽 눈을 뜨지 못했다.
삶은 계란하고 번데기 다져서 사료에 섞어주고 관찰. 그사이 금계하고 서열 싸움을 했단다.
백한은 발정기라 사나워졌다.
황금계를 쪼아 죽이고 암컷마저 죽였다.한창 예뻐지던 놈이었는데..........
백한을 바깥 닭장으로 몰아냈다. 닭들한테는 고약하게 굴지 않는다고 했다.
수컷들은 서열싸움으로 사나워져서 정나미가 떨어진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본능대로 행동하면 추악하다.
사람은 교육 받는 덕분에 본능를 자제한다지만 그래도 동물같이 먹이싸움을 일삼는 천박한 인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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