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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추억

6-킬링필드-뚜엉슬랭

멀리 가는 향기 2010. 2. 15. 12:20

 9일 오전 킬링필드.

 킬링필드라는 곳은 민주캄푸치아의 치세 시절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힌 곳이다. 이런 장소가 수십 곳이 있는데, 발굴당시 이곳에 1만 6천여명이 묻혀있었다고 한다.

 

 

                    위령탑.

 

우선 킬링필드에 대한 요약 설명부터,

 

1970년 3월, 캄보디아민족의회는 국왕 시아누크가 모스크바에 가 있는 크메르 공화국을 세웠다.

1970년 10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론놀 장군이 크메르공화국 총리로 취임했다.

국왕 시아누크는 '불교 사회주의'라는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운영했기에 캄보디아 사람들은 우파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론놀정부의 부패가 심각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반정부 공산군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 반정부 공산군이 크메르 루주(Khmer Rouge, 붉은 크메르)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크메르루주군은 1975년 4월 17일 프놈펜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크메르루주는 민주캄푸치아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된다.캄보디아가 크메르루주의 세상이 되면서 지도자로 떠오른 인물이 인간백정이라고 불리는 폴 포트다.

 

 

 

폴 포트는 새로운 캄보디아를 선포하며 나라를 공산화시키에 이른다. 모든 경제행위가 배급을 통해 이루어지며, 종교와 교육 역시 금지되고 공산사상 교육이 모든 걸 대체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무산계급의 적, 친 베트남 세력들을 죽였고, 이것이 양민 학살로 번져 이시기에 200만명의 캄보디아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방송용 스피커가 달려있던 나무.

 

학살 당시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음악을 크게 틀었다고 한다.

총알을 아끼려고 어린 아이들은 다리를 잡은 채 머리를 나무에 쳐서 죽였다니.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운 존재인가.

 

이곳을 돌아보다 체하고 말았다. 이상향을 건설하겠다고 했으나 결국은 .......

역사란  진실 왜곡이며 위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뚜엉슬랭 고등학교

 

폴 포트는 크메르 루즈 군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들은 오랜 숙적이며 침략자인 베트남 정권에 저항했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부패한 론 놀 정부에게 저항했다. 또한 자본가에게 저항하고 약자의 편에 선 공산주의자였다.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자족하는 삶에 만족하기에 옆 마을에 누가 사는지 따위엔 관심도 없는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은 과격했다. 폴 포트는 모든 도시인들을 시골로 추방시켰다. 지식인, 부자, 외국인과 교류가 있는 사람, 전문직, 욕심이 많을 것이라 짐작되는 사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안경을 낀 사람, 손이 고은 사람 등도 포함되었다. 지배계층의 사람들을 무작위로 추출해내 감금했다. 그리고 갖은 고문을 가했고, 죽였다.

그들을 감금하고 고문한 곳이 뚜엉 슬랭 고등학교였고, 그들을 끌고 가서 죽인 곳이 킬링 필드였다

 

 고문실

 

 고문실 벽에 걸린 당시 수감자 사진

 

 교실에 만든 감옥

 

 수감자들을 감시하던  관리인. 그들은 나어린 청소년 이었고 영웅심에 들뜬 그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캄보디아의 역사에는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한 두 차례 시도가 있었다.
9세기 초에서 15세기 중엽까지 약 600년에 걸친 앙코르 왕국의 시대에 그 이상향이 종교적 상징으로 실현되었다.

두 번째 시도는 1970년대 중반 크메르루주 정권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려했으나 그것은 학살 현장인 킬링필드를 남기고 처참하게 몰락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프놈펜 사범대학 의상디자인 학과 강의실

 

이곳에서 다케오 공방의 짜란이 수업을 받고있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유응현 교수가 코이카 단원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내가 입고 있는 데님 원피스는 우리 가족의 헌옷으로 만든 것이다 (남편과 아들 딸의 청바지와 내 원피스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 나는 준비해간 누비 조끼를  보여주고 어떻게 리폼했는지를 설명했다.

 

내가 생각하는 의상 디자인의 첫 번 째 덕목은  "네 자신을 알라"이다.

우선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을 생각하고

자신의 성향을 담아 내야  그 사람만의 개성이 살아나는 스타일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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