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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반사

232호 헤드셋 기사 아저씨

멀리 가는 향기 2012. 1. 7. 22:25


<뿌리 깊은 나무> 마지막회를 어머니와 함께 시청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석규 보다 세종역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7723 기사 아저씨. 머리에 마이크 단 사람”
그러면서 오늘 일이 생각나셨는지 말씀을 보태셨다.
무릎 관절이 않 좋은 어머니는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다니신다.

막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버스는 이미 출발을 했다고. 그런데 출발했던 버스가 가다말고 서서 기다려 주더란다.

어머니가 서둘러 버스에 오르는데,
“어머니, 찬찬히 천천히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서두르시다 큰일 납니다.”
목소리를 듣고 보니 그 기사양반 이더라고.
노인네가 버스 기다리느라 추위에 고생하실까봐 출발 했던 버스를 다시 세워준 것이다.

그 아저씨 덕분에 어머니는 추위에 떠는 고생을 면했다면서 고마워 하셨다.
오늘 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종종 그 아저씨 칭찬을 하셨다.
나도 그 아저씨를 고맙게 눈여겨 봐오던 터라. 아무리 바빠도 이런 미담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년 <교차로> 지면에 칼럼 쓸 때 발표했던 원고 내용을 첨부해서 서울시 교통공무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헤드셋 기사 아저씨


어머니께서 웃음 띤 얼굴로 귀가를 하셨다.
“물리치료사가 찜질팩 덤으로 얹어줬어요?”
어머니는 찜질팩을 두 개 씩 밖에 안준다며 서운해 하셨는데,
어쩌다 한 개 더 받으면 몸이 개운해졌다고 좋아하셨기에 묻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 마을버스를 탔는데 기사가 하도 친절해서 그래. 어머님,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타세요.
어머님이 자리에 앉으시면 출발 합니다. 목소리도 시원시원하고 인사도 넙죽넙죽 잘하고....
그런 기사 첨 봤다.”
“그 아저씨 헤드셋 끼지 않았어요?”
“응, 마이크 달고 말하더라. 버스에 타는 사람마다 인사를 해.
노인네들이 버스를 서둘러 타려다가 사고를 당한다고 그럴 때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교통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 해주더라만 이놈의 정신이 듣고도 까먹었다.”
어머니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알만한 사람이었다. 처음 그 아저씨를 본 건 여름이었다.

버스에 오르는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답례를 했더니 아름다운 동네에 사시는 분이라 웃는 얼굴도 고우시네요 했다.
나는 아저씨가 립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맨 뒷좌석 손님, 더우세요? 에어컨 켤까요? 어떠세요. 추우시면 말씀하세요.”
그제서 나는 입에 발린 친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저씨의 행동거지를 살피게 되었다.
아저씨가 인사를 건네도 답례는커녕 무표정으로 버스에 오르는 승객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낯선 사람과의 응대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건 익숙한 광경이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아저씨가 승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제가 책에서 읽은 건데요. 우리가 먹는 물 있잖습니까?
그 물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면 물의 결정이 별처럼 예쁜 모양으로 변한데요.
그렇듯이 자꾸 좋은 말을 하고 웃는 얼굴을 하면 그 사람 인상도 달라지고 좋은 일도 생기는 겁니다.”
그날 나는 기사아저씨가 신입사원이라고 짐작을 했었다.
처음 운전대를 잡았으니 의욕이 넘치겠거니 했었다.
승객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무관심에 진이 빠지면 시들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가을에 그 아저씨를 두 번째 만났다.

“노인분들이 차를 놓칠까봐 뛰어 오시는데 그럴 땐 뒷문으로 타셔도 됩니다.
기다려드리니까 서두르지 마세요.”
수 십 년 버스를 이용했지만 처음 듣는 말이었다.
노인들에게 버스는 대중교통이 아니었다.
굼뜨게 오르내리다간 집안에 처박혀 있지 왜 돌아다니냐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노인이 차를 타려고 하면 차문을 닫아버리는 기사를 여럿 보았기에 아저씨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언젠가 시간에 쫓겨 뒷문으로 올라탔다가, “아줌마! 뒷문은 내리는 문인 거 몰라요!“ 하고
무안을 당한 적이 있는 나는 더욱 감동을 먹었다.

그날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노선 언제부터 운행하셨어요?”
내 말은 언제부터 운전대를 잡았는가를 묻는 거였다.
“지난 2월부터요. 일곱 대가 움직이는데 점심시간 빼기도 바빠요.
706번 운행할 때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말입니다.
706번이 서울에서 가장 긴 노선이거든요, 왕복 4시간 50분 걸립니다.”
내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구조조정에서 물러난 가장이 호구지책으로 운전대를 잡았을 것이라 짐작했으니까.

그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생명을 맡긴 승객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시는
의무를 다하는 중이었다.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2010.1.25.
                           

                                   어느날 강연 시간에 쫒겨 서둘러 외출을 하다보니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굽높이가 다른 짝짝이 구두를 신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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