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를 하다가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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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친정 아버지 생신에 대가족이 모여 구기동에 있는 승가사로 하이킹을 갔었다.
승환이는 욕심껏 구운 오징어를 먹고 탈이 나서 제 아빠랑 화장실에 기고
절집 앞에서 아름이랑 다리쉼을 할 때였다.
어떤 분이 전문가용 DSLR 카메라로 우리 모녀 사진을 찍기에 의아해 했었다.
"모녀가 하도 정다워 보여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습니다."
사진을 찍은 분은 아름이가 귀여워 죽겠다는 눈길을 거두지 않았고. 일행분도 곁에서 거들었다.
"걱정마세요. 이 사람 신원이 확실 합니다. kbs 방송국 사람이에요."
그 분이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아름이 더러 주소를 적어달라셨다.
아름이가 주소를 적고 얼마 뒤에 사진이 배달 되었다.
(그 사진은 숨바꼭질 중)
그리고 아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서 사진 감사히 잘 받았다는 편지를 썼다.
원고지에 반듯하게 쓴 답장을 시작으로
권광명 아저씨는 <방송국 아저씨>가 되어 초등 2학년 아름이의 편지 친구가 되어주셨다.
아저씨가 <아가방>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12페이지에 숨어있던 아름이를 발견하고 "찾았다"고 하면서 ,
웃고있는 아름이를 보고 마주해서 웃었던 아저씨를 상상할 수있겠어?
그렇게 꼭꼭 숨어있을게 뭐람.
어쩌면 아름이는 글솜씨가 그렇게 고울까? 아마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보지?
참, 아저씨가 아름이의 친구하자는 말을 받아들이는 뜻으로 책 한 권 보내는데
아마 엄마하고 함께 읽어야하지 않을까 모르겠네..
..............1988.11.29
지난 그리스마스때 아름이가 방학을 맞아 서울 외갓집에 온다기에
혹시나 아저씨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까하고
재미있는 인형을 준비해 두었는데, 아직도 잠을 자고 있지 뭐야.
참, 아름이가 정성스레 만들어 보낸 카드, 정말 큰 선물이었어.
아저씨 친구 아름이가 보냈다고 막 자랑을 했지.
.....
아름이도 크면 알게될거야.
자연에는 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그리고 다정한 속삭임이 있다는 걸.
외갓집에 가서 산에 오르면 한 번 귀를 기울여 보렴.
.......................................................1989년 3월3일
그날 엄마랑 동화 발표 잘 했겠지?
아마도 아름이는 맑디 맑은 엄마의 동화 같은 사랑 속에서 그 주인공인양 살고있으니
쑥쑥자라기도 잘 할 것이고 또 못할 것도 없을 것이야.
걸스카웃에 입단 한 거 축하해!단복을 입은 모습은 더욱 귀엽고 예쁠거야.
어린이날 아름이에게 보내려했던 선물 이제야 보낸다.
..........................1989년 5월 24일
지난번 엄마랑 오빠랑 방송일로 회사에 왔을 땐
<아저씨 친구>가 너무도 갑작스러웠고 또 너무너무 반가웠어.
그래서 아름이랑 모두 가고난 다음에 '내가 누굴 만났지?"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니까.
아름이하고 통화했을 때 아름이가 아르켜준대로 텔레비전을 보고 아름이가 방송에 나온 것도 잘 보았단다.
아저씨 친구는 여름휴가도 못 갔단다. 그건말이야.
아저씨 친구가 더위를 피해서 어디로 가는게 아니고 ,
더위가 내게로 와서 쉬고 가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있잖아 <꼬마성자>라는 책하고 재미있는 작난감 시계 보냈어.
.............................1989.8월10일
서울로 이사와서 친구 많이 사귀고 재미있겠지?
그간 아저씨도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린이날 마저 잊어버릴 뻔 했구나.
아저씨가 옛날에 원서로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라
아름이에게 권하고 싶어서 보내는데 어떨지 모르겠네.
............................1990년 5월3일
지난번 인천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아르켜 주었던 서울주소를 잊어먹었지 뭐니.
그래서 아름이 편지 오기만 기다렸단다.
그리고 방송국은 연말과 새해에 제일 바쁜 때이거든.
이제 방학이 끝나면 또 한 학년이 높아지겠구나. 4학년이 된다고.
이제 자주 연락하고 편지할게.
아름이 잘 있어. 응?
.............................1990년.1월.10일
정이 담뿍 담긴 <방송국 아저씨>의 편지는 아름이가 4학년이 되면서 끊겼다.
슬하에 아들만 둘 두었다는 그 분은 아름이를 정말로 귀여워하셨다.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성실하게 답장을 해주셨다.
그러하기가 쉽지 않다는것을 나는 안다.
답장 내용으로 보아 그 분이 자연을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하며 책을 가까이하는 다정다감한 분이라는것을 알 수 있다.
살면서 남에게 특히 어린아이에게 마음을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름이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신 권광명 아저씨!
부디 몸 건강히 편안한 노년을 보내시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45호 향기통신의 주인공,
<방송국 아저씨 친구>(전 KBS사회교육국 전문위원 ) 는 2008년 3월 30 일 운명을 달리하셨단다.
아름이가 <향기통신>을 읽고 방송국 아저씨를 수소문하다 검색 결과를 알려왔다.
어느핸가 아름이가 문득 생각나서 KBS에 근무하는 친구 아버님한테 여쭈었더니 모르겠다고 했단다.
사진을 취미로 자연을 즐겨찾던 다정다감한 어른이고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셨는데 (사모님( 전 00여고 교장),큰 아드님은 언론정보학과 교수로, 작은 아드님은 수학과 교수로 재직. )
서둘러 먼길 떠나셨단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참으로 이해 못하겠다.
하나님은 왜 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먼저 데려가시는 걸까?
이 세상은 진흙탕 만들어 놓고 하늘 왕국만 아름다이 가꾸시려고?
참말 야속타.
맑은 영혼을 가지셨으니 분명 누군가의 수호천사로 바삐 돌아다니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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