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향기 환갑기념으로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
시월드 형제들이 환갑을 맞으면 가족 여행을 해왔는데 ,
아주버님과 형님들 무릎이 시원치 않아 국내 여행을 택한 것이다.
비가 오락가락 재주를 부리든 말든 일정 대로 움직였다.
처음 행선지는 메이즈랜드. 세계 최대 미로공원이고 런닝맨 촬영지라는 말에 속았다.
미로 공원을 흉내 내었지만 미로 공원에 견줄바가 못된다.
2천여 그루의 랠란디나무로 미로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가꿔온 26년 세월을 몇 년 만에 흉내내려 했다니...
다음 행선지는 성산 일출봉.
바람과 싸우며 쉬엄 쉬엄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비바람 때문에 바로 하산.
시야를 분간할수 없는 폭우를 헤치고 무사히 우도에 도착.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우도 피아이피에서 맞이한 일출.
고모부와 우도 스켄들 촬영을 하고 (남동생과 이마트에서 카트 밀고 다녔다가 재혼했다는 스켄들이...^^)
우도 일주에 나섰다.
등대 공원
검말레
검말레에서 보트를 타면 우도 8경을 둘러 볼 수있다.
<주간 명월>를 보기 위해 굴 속으로...
주간 명월(대낮에 동굴 천정에 뜬 달) 얼굴 바위
허브동산 가는 길에 들른 귤농장.
예정에 없던 일출랜드 코스가 추가 되었는데, 미천굴에 들어갔다가 실망.
굴을 인위적으로 넓히고 중앙에 돌기둥을 세우고 용을 그려 넣었는데 천박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정원 여기저기 런닝맨 촬영지 광고 입간판을 세워 놓은 것도 꼴불견,
허브동산에 도착.
호텔과 팬션 강추! 미술관에 있는 저 계단에 마음을 빼앗기고......
팬션 앞 정원의 허브와 조형물도 품위있고.
허브향 찜질방 아로마 테라피 족욕. 저 돌의자 얼마나 편안하던지.
정원 한 켠에 젊은 연인들을 위한 프로포즈 공간이 있다.
갱상도 사나이 같이 무뚝뚝한 아주버님께 프로포즈를 하시랬더니 딴청 ^^
점심식사 후에 들른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세상에 이런 일이! 참으로 믿지 못할 사건 사고들이 많기도 하다.
주상절리에서 일몰을 보고 산방산 탄산온천행.
산방산 탄산온천은 설악 오색 , 충주 앙성과 같은 탄산 온천이다. 강추!!
늦은 저녁을 먹고 카멜리아힐 목조주택에 묵었다.
카멜리아 힐에선 한라산과 산방산이 보인다.
카멜리아 힐의 유럽식 목조주택은 동백꽃이 수놓인 정갈한 침대 시트와 실내에 배인 나무향 때문에도 숙면을 취할 수있다.
수만평 동백꽃 정원 안의 유럽식 숙소는 제주 여행의 흥취를 배가 시킨다.
새 책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신 아주버님이 내 책을 사들고 인근의 초등학교 교장실로 찾아가셔서
아이들에게 읽히라고 선물을 하시고 오셨단다.
코엑스에서 사인회를 할 때도 예고 없이 나타나셔서 밥 먹으러 가자셨다.
나의 든든한 후원군이 되어 주신 시월드 대장님
고무부한테 '이악 깩쟁이' 소리를 듣는 막내 동서는 모임이 있을 때면 간식을 챙겨오는 살림꾼.
신장이 안 좋아 걱정이지만 본인 스스로 잘 관리하니.....
지난 봄엔 없던 조형물들이 여기 저기 생겼다. 카멜리아 힐 회장님 말씀이 딸이 한예종 출신이고 사위가 한예종 교수란다.
아버지가 일궈 논 정원을 자식들이 가꿔 갈 터이니 남 보기에도 든든하다.
동백이 피고 지고.
11월 하순이 되면 산책로가 동백꽃잎으로 덮힌다고.........
떠나기 전에 잠깐 회장님을 만났다. 아들이 서울 생활을 접고 곁에 있게 되어 몇 달 전부터 편해지셨다고.
옆 집에서 주무신 한영대학 이사장 내외분과 인사를 나누고.
쇠소깍에서 보트를 타려니 오후 4시 반은 되어야 한다고..
사려니 숲의 가을 정취
최근 연리목이 발견 되었다는데 보지 못하고 왔다.
그동안 제주에서 이름난 곳은 다 둘러 본 셈인데 사려니 숲, 돈내코, 비자림은 정말 아끼고 싶은 비경이다.
훼손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 해야 한다.
마지막 코스는 제주대학 앞의 공동묘지.
만주에서 귀국하신 할아버님은 서울 큰 아들 집에 계시다가 6.25를 맞으셨고
1953년 3월 제주도 피난지에서 돌아가셨단다.
당시 10살이던 아주버님도 할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없다신다.
아주버님은 피난길에 수원에서 가족을 잃어고 거제도 고아원까지 가게 되셨단다.
밥 얻으러 다니는데 시아버님 친구분이 얼굴의 점을 보고 알아보셨다고
고아원에 얌전히 있으면 네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마 하셨는데
그분이 피난민 수용소마다 편지를 띄워 아버지를 찾아주셨다고.
부산으로 피난 오신 시 어머니는 삼남매를 찾기 위해 거리에 나앉아 김밥 장사를 하시다가
큰 딸을 찾으셨다니 소설같은 이야기다.
어른들 몸 생각해서 일정을 짯고 무리없이 잘 다녀왔다.
이제 한달 보름 남짓 마무리를 잘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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