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향기 스타일

504회 패션트렌드

멀리 가는 향기 2014. 2. 6. 09:50

1900년대

 

1900년 1월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하고 화려한 에드워디언 시대가 도래했다.

산업발전으로 여성들에게 직업이 생기고  경제적 여유로 스포츠가 확산되었다.

이때 유행한 미술 사조는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복식은  s커브 실루엣이 유행.

 색체는 인상주의 영향을 받아 파스텔 색조를 선호했다.

유럽의 귀부인들은 비둘기 가슴처럼  가슴을 강조하고 허리를 코르셋으로 조여 S자형 실루엣을 만들었다

 

깁슨 걸(화가 깁슨의 그림)"스타일 유행을 따랐다.

 

1910년대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좋은 시절로 상징되는 벨 에포크 (아름다운시대)시대는  유럽에서 중국과 일본의 교역을 통해 동양품풍의 디자인이 각광을 받았다.

오리엔탈 무드의 영향으로 디자이너 푸아레는 터키에서 영감을 얻은 하렘 판탈롱 과 마나레 튜닉, 기모노 코트 스타일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는 시기를 기점으로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직선 실루엣으로 변화 했다.

 

 

기모노 코트와 호블 스커트/  램프 쉐이드 튜닉

 

1920년대

 

1차 대전에서 미국의 승리로 군수산업이 확장되고 소비와 쾌락 추구의 시기가 되었다.

대중문화가 태동한 시기로  재즈의 유행이 복식의 변화를 주도했다.

영화< 위대한 캐츠비>에  압축 ..........

 

가르손느 스타일은 보이쉬스타일에 여성적인 면을 가미시켰는데 말괄량이 같다고 플래퍼 스타일로도 불렸다.

 

1930년대

 

뉴욕증시폭락으로 세계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옷을 생산.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 보내자는 운동이 확산 되면서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아워글레스(모래시계 모양) 실루엣이 유행한다

이 시기에 복식이 기능별로 구분되고  T  P O(장소, 시가, 상황) 에 따라 의복을 구별해 입게 되었다.

이때 지퍼가 발명되었다.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줄 선 시민들 

 

 

립스틱 효과라는  말은  대공황기의 매출 통계로 만들어진 경재학 용어.

즉 불황기에 돈을 최대한 아끼면서 품위르 유지하고자 심리적 만족을 추구라는 소비성향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로 패션을 감히 논하기도 어려운 시대였다.

 

1940년대

세계 2차 대전으로  밀리터리룩이 유행했다.

전쟁으로 노동력과 물자부족으로 영국에서는 1인당 1년에 의복을 구입할 수있는 쿠폰이 20장 씩 배급되었다

 

 

천의 공급량이 적어지면서 뜨게질이나 페치워크 같은 방법으로

재활용 할 것을 방송매체에서 권장 하고 이러한 활용법이 새로운 기법으로 활용되었다.

천연섬유의 공급이 달리자 나일론과 폴리 에스테르 같은  합성섬유가 사용되고

의복 사이즈와 섬유의 함량 등 취급 방법을 라벨로 부착 하기 시작했다.

 

1947년 크리스티안 디올이 뉴룩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패션의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패션의 제국을 세운 남자 크리스티앙 디오르

"나는 꽃같은 여성을 디자인 했다"

 

디오르는 전쟁으로 인해 억제되었던 여성들의 욕구를 아름답고 보수적인 여성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뉴룩으로 가시화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디오르의 뉴룩

 

1950년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로 경제적 호황기를 맞이 했다.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유명인사와 스타가 입은 옷은 순식간에 유행 되었다.

유명인사들의 영향력 등은 패션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와 소통하도록했다.

이시기에 복식 사상 최초로 룩 look 라인line이 보편적으로 대중화한 시기였다.

54년 패션계의 빅뉴스 샤넬의 컴백!

이때 샤넬은 투위드 자켓과 샤넬라인 스커트를 유행 시켰다.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 시켰고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친 패션의 혁명아 /코코샤넬

"사람들은 나의 옷 입는 모습을 비웃었지만 그것이 바로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

나는 그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허름한 드레스를 입으면 그 옷을 기억하지만 멋진 드레스를 입으면 그 여자를 기억한다

"패션은 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몸단장을 하지 않고 외출하는 여자를 이해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예의를 차리지 않는 행동이다

오늘이 운명의 상대와 만나게 될 날일 지도 모른다."

운명을 위해서라면 최대한 예뻐 보이는게 최선이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나는 코코샤넬이다"

 

 

영화 <코코샤넬>에서 샤넬의 뒷모습은 사회적 관습을 벗어버리고 세상을 직관적으로 바라 보는 그녀의 시각을 투영한다.

 

샤넬은 남과 다름을 주저하지않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체적으로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길을 주체적으로  걸어가기 위해 두려워 하지 않았다"는 점이 멋지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극복하고 세기의 연인들에 둘러 싸여 독립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았던 샤넬.

보육원에서 바느질을 배운 그녀는 보육원을 떠나 술집에서 코코라는 예명으로 3류가수로 일했다.

그 시절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지인들에게 모자를 만들어 주었는데 코코라는 로고는 그때 만들어졌다.

1910년 남자친구의 후원으로 모자 가게를 연 뒤 ,

남성의 속옷용으로 쓰이던 저지(jerey)로 의상을 제작하는 실험정신을 보였다.

그후로 남성의 스포츠 웨어를 스웨터나 세일러 브라우스등 편안한 여성복에 도입했다.

 

 

지방시의 영원한 뮤즈 오드리 햅번

 

 

 지방시는 1951년에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를 오픈한 뒤 '파리의 신동'으로 불리게 된다.

디오르의 보수적인 디자인과 반대 되는 젊은 혁신성으로 화자되었다.

장식을 배제한 단순미를 보여 줌으로  외형적인 단순함과 세련됨 그 자체로,

"여성이 옷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옷이 여성을 돋보이게 한다."는 그의 패션 철학을 담았다.

 

 

5-60년대 영원한 패션 아이콘 오드리 햅번

 

 54년 영화 '사브리나' 이후 여배우를 중심으로 한 영화와 패션의 공생 관게가 시작 되었다.

햅번의 유행 아이템 대표적 스타일은 지방시에서 만들어 냈다.

헵번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도 지방시 옷을 가슴에 품고 키스했다고 한다.

 "신이 내게 허락한 최고의 선물은 옷을 고를 수 있는 심미안이다. 내 배역에 맞는 옷을 입으면 옷에 맞는 표정과 행동, 태도가 나온다."

햅번의 안경태와 플렛슈즈, 길이가 짧고 화려하지 않은 오버코트 라인은 오늘날의 미니멀리즘으로 통칭되는 트렌드를 제시했다.

 

 

재클린과 그레이스 켈리의 옷을 만들던 위베르드 지방시는 햅번과 사랑에 빠져 약혼까지 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40년 넘도록 우정을 이어갔다고.

 

1960년대

소비라는 개념이 강조되었고 상대적인 약자 집단인 여성과 흑인이 대두되기 시작 했다.

반체제 라고 부릴 만큼 아버지 세대를 벗어나기 위한 젊은이들의 도전과 반발의 시대

유니섹스, 케쥬얼, 미니 등장

 

 

여성에게 바지 정장을 입힌 최초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1966년 유행한 남성복 스타일의 여성 바지정장인 스모킹 룩이다.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 디자이너로서 그는 기성복 라인을 최초로 론칭했다.

그가 발표한 사다리꼴 '트라페즈 룩'과 '사파리 재킷', '점프수트', '트렌치코트'는 1960년대 여성 패션의 핵심

 

 이브 생 로랑은 몬드리안 룩을 비롯해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세잔 등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고 팝 아트의 예술 세계를  의상에 표현했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을 주제로 한 1965년 '몬드리안 룩'의 미니 드레스는 20세기 패션사에 한 획을 그었다.


 

-웨딩드레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에서 영감을 얻는 드레스


평생 우울증과 약물중독으로 시달리다 뇌조양으로 사망 한 그를 ,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평생의 연인으로 지켜 본 피에르 베르게가 말했다.

"디자이너라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큰 압박감속에서 살아야하는 거싱거든요. 유명세,승리,살채,캣 워크....... 끔찍한 직업이에요."

"명성은 눈부시면서도 슬픈 행복이다. "

                        이브 생 로랑의 영화 "라무르' 에서

자연으로의 희귀를 추구하는 낡아 헤지거나 빛바랜 청바지를 즐겨입는 히피룩과 미니 스커트 유행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모방하면서 록큰 롤 문화 확산

 

1970년대

절약이 미덕이었던 시대가 반영되면서 실용적이고 간편한 청바지와 니트가 보편화.

 패션을 통해 개인적인 취향을 잘 표현하게 되었다.

일상적인 편안함과 신체 건강에 관심이 높아져 기능복을 패션에 접합.

 

 

 

"나는 옷을 디자인하지 않는다 꿈을 디자인 한다." 랄프 로렌

폴로라는 이름으로 넥타이부터 출시

폴로의 모든 제품이 입점해 있는 라인랜더 맨션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라이프 스타일까지 쇼핑 할수있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여성복 라인

 

 

유니섹스

펑크

 

1980년대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개방과 정치개혁을 서두로  포스트모더니즘과 패션문화가 다양해졌다.

환경의 중요성이 대두 되면서 .지구촌' 개념이 부각된 시대

 피에르발맹,지방시, 피에르 가르뎅, 웅가로등과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랑코 페레, 돌체앤 가바나,페라가모,프라다,미소니 펜디 구찌  이세이 미야케, 콤므데 가르송, 겐조 등은 이시기의 대표적 디자이너 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다이애너비 스타일 영향으로 파워슈트 유행

 

 

건강과 몸매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에어로빅 조깅 브레이크댄스 열품으로 스포츠 웨어가 패션화

 

 

1990년대

세계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전세계인이 동시에 즐기는 스트릿패션이 가능

미니멀리즘, 에스닉, 시스루룩등 유행  자유시장 개방에 따라 유행의 지구화시대 돌입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라벨을 마케팅이나 디자인에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고급스러운 명품에서 라벨이 눈에 띄게 디자인되는 예가 많아지면서 명품이 대중화되어  의류, 핸드백, 안경, 신발, 기타 액세서리 등을 자신의 경제력에 알맞게 구매하게 되었다

 

                                                            - 미우치아 프라다

"패션은 자기 선택이자 표현입니다.

누군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 거울을 보고 먼저 자신을 연구하라고 말해줍니다."

 

"저는 늘 사람을 관찰 합니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왜 입었는지를 살펴봅니다. 남들보다 다른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죠."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새로움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노력한다."

 

미니멀리즘 -

화려한 장식보다 실용성을  인공직물보다 자연소재를 곡선보다 직선으로 다채로운 색보다 무채색을 선호하는 패션 경향 

 힙합

무릎기장의 배기팬츠를 입고 ,유명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허리 고무밴드, 헐렁한 상의에 매우 큰 사이즈의 신발을 신었다

 

시스루

속이 훤히 비치는 직물로  슬립 같은 드레스를 ''''

스키니 진의 유행몸에 딱붙게 디자인된 스키니팬츠는 2013년까지 사랑받고있는 아이템

 

 

'향기 스타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522호 양모 스웨터 리폼  (0) 2014.03.27
508회 모슬린 드레스  (0) 2014.02.19
489회 트렌치 코트  (0) 2013.12.19
488회 향기스타일 달력   (0) 2013.11.19
455회 위대한 게츠비  (0) 2013.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