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향기 스타일

488회 향기스타일 달력

멀리 가는 향기 2013. 11. 19. 13:27

 

 

 

 

 

 

 

 

 

1

무기징역

 

나를 두고 먼 길 떠난 그를

액자에 가둬 벽에 걸었다.

 

아내에게 진 빚이 많아 빚 갚기 전에

눈 감을 수 없다던 그가

액자 속에 갇혀 무기 징역을 산다.

 

견우직녀는 은하수를 두고 애가 끓지만

우리를 갈라놓은 이승과 저승은 구만리장천.

 

 

 

2

도둑놈 심보

 

돈 많은 여자 만나기도 어렵고......”

지하철에서 중년 사내 둘이 흘리고 간 말은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보다 더 공허하다.

 

돈 많은 남자 만나 팔자 고치려는 여자나

돈 많은 여자 덕에 놀고먹으려는 남자나

피장파장 도둑놈 심보.

 

 

 

 

3

꽃샘 눈

 

죽었다 깨나도

그 솜씨 따를 수 없다.

그 누구도 대적 못 한다

 

가늠할 수 없는 초대형 화폭에

저 섬세한 붓 터치

저 완벽한 채색

그야말로 하느님 솜씨.

 

 

 

 

 

4

해님이 하는 일

 

해님은

높고 낮은데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해님이 하는 가장 귀한 일은

어둡고 차가운 땅 속에 묻힌

씨앗 한 톨 , 보듬어

마침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5

forget-me-not

 

"이쁜아!"

그리 불러주는 이 서방님뿐인데

분명히 들었다. 그 목소리.

돌아보니 운전대 잡은 남동생 뿐

'꿈결이었구나.'

 

차창 밖 아카시 꽃초롱 늘어졌는데

forget-me-not

그가 꿈길로 다녀간 것이리.

 

"그러고 보니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네."

뜬금없이 읊조리는 혼잣말을

무심하게 남동생이 받는다.

"함께 기념할 사람도 없는데 뭘."

"그렇지 참."

살면서 이리 때때로 허망한 데

추억은 늘 새록새록.

 

 

 

 

 

6

연오랑과 세오녀의 노래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당신을 두고 나는 가네.

원수 같은 하늬바람에 부부이별이 웬 말인가

갈매기야 널랑은 부디 날아가서

이내 몸 떠나가도 마음만은 두고 간다 전해다오.

 

어디로 가면 임을 만날 꺼나

임 계신 곳을 알면 어딘들 못 찾아갈까.

두리둥실 높이 솟은 저 달은

우리 임 계신 곳 비춰나 주지.

 

 

 

 

7

견우직녀의 노래

 

그대 거기 있나요날 보고 있지요?

늘 거기 그렇게 있지요?

바람이 산들 불면 그 바람에 실린 듯

구름이 둥실 뜨면 그 구름에 실린 듯

그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다오.

 

질기디 질긴 비단실로  씨실 날실 걸어 놓고

오락가락 북을 놀려  자나 깨나 베를 짜서

이쪽저쪽 하늘 끝에 매어 구름다리 만들어

그리운 임 보고지고 정다운 임 보고지고

 

 

 

 

서 서방

 

엄니 꿈에 처음으로 서 서방이 찾아왔단다썩을 놈의 영감은 사흘거리 찾아와서 속을 뒤집어 놓는데. 서 서방하고 부르니 예-에 생시처럼 대답하고 올라와서 엄니가 타준 다방커피를 달게 마시더란다.

엊그제 서서방은 딸내미 낮잠을 깨워 가스 불에 올려놓은 행주가 타는 걸 알려줬단다. 내 꿈엔 언제 오시려나. 서 서방은

 

 

 

 

 

 

 

 

 

9

     하늘바라기

 

하늘과

당신과 나의 별리

 

당신 훌훌 빈 몸으로 떠났건만

내 곁에 두고 간 마음이 많아

 

하늘 까마득히 물러앉으면

내 마음 까치발로 다가가는

하늘바라기

 

 

 

 

 

10

하늘 유리창

 

누가 저리 닦아 놓았나?

하늘 유리창

 

우리 님은 내려다보고

나는 치어다보고

눈 시리도록 눈 맞춤 할 수 있겠네.

 

 

 

 

 

 

 

 

 

 

 

 

 

 

12

하늘바라기2

 

그리움이란 원래 멀리에 있는 것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성마르지 않는 것

 

나 어느 하늘아래

비 내리는 쓸쓸한 뒷골목을 거닐지라도

서럽지도 두렵지도 않아

 

저 멀리 아득히 먼 곳에서 굽어보고 지켜주는

든든한 눈길 가슴에 지녔으니.

 

 

 

 

2015년 1월 

 

 

 

 

 

넥타이는

한 사내가 먹여살려야할 식솔들의 목숨줄이다.

하루에도 골백번 넥타이를 풀고 싶지만

그리 못하는 것은 자기에게 목메인 식솔들 때문이다.

 

제 한 몸이라면 꿀리는대로 하겠으나

그도저도 못할 것이 아비로 지아비로 살아갈 멍에때문.

사내가 위선과 비굴에게 고개 숙이는 것도

넥타리를 조여맨 까닭이다.

 

사내는 날마다 갈망한다.

넥타이 훌훌 풀어버리고  제 홀로 떠나고싶다고.

목울대까지 올라오는 사내의 욕망을

넥타이가 어쩌지 못하게 꽉 움트러 잡고있는 것은

넥타이가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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