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무기징역
나를 두고 먼 길 떠난 그를
액자에 가둬 벽에 걸었다.
아내에게 진 빚이 많아 빚 갚기 전에
눈 감을 수 없다던 그가
액자 속에 갇혀 무기 징역을 산다.
견우직녀는 은하수를 두고 애가 끓지만
우리를 갈라놓은 이승과 저승은 구만리장천.
2월
도둑놈 심보
“돈 많은 여자 만나기도 어렵고......”
지하철에서 중년 사내 둘이 흘리고 간 말은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보다 더 공허하다.
돈 많은 남자 만나 팔자 고치려는 여자나
돈 많은 여자 덕에 놀고먹으려는 남자나
피장파장 도둑놈 심보.
3월
꽃샘 눈
죽었다 깨나도
그 솜씨 따를 수 없다.
그 누구도 대적 못 한다
가늠할 수 없는 초대형 화폭에
저 섬세한 붓 터치
저 완벽한 채색
그야말로 하느님 솜씨.
4월
해님이 하는 일
해님은
높고 낮은데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해님이 하는 가장 귀한 일은
어둡고 차가운 땅 속에 묻힌
씨앗 한 톨 , 보듬어
마침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5월
forget-me-not
"이쁜아!"
그리 불러주는 이 서방님뿐인데
분명히 들었다. 그 목소리.
돌아보니 운전대 잡은 남동생 뿐
'꿈결이었구나.'
차창 밖 아카시 꽃초롱 늘어졌는데
forget-me-not
그가 꿈길로 다녀간 것이리.
"그러고 보니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네."
뜬금없이 읊조리는 혼잣말을
무심하게 남동생이 받는다.
"함께 기념할 사람도 없는데 뭘."
"그렇지 참."
살면서 이리 때때로 허망한 데
추억은 늘 새록새록.
6월
연오랑과 세오녀의 노래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당신을 두고 나는 가네.
원수 같은 하늬바람에 부부이별이 웬 말인가
갈매기야 널랑은 부디 날아가서
이내 몸 떠나가도 마음만은 두고 간다 전해다오.
어디로 가면 임을 만날 꺼나
임 계신 곳을 알면 어딘들 못 찾아갈까.
두리둥실 높이 솟은 저 달은
우리 임 계신 곳 비춰나 주지.
7월
견우직녀의 노래
그대 거기 있나요? 날 보고 있지요?
늘 거기 그렇게 있지요?
바람이 산들 불면 그 바람에 실린 듯
구름이 둥실 뜨면 그 구름에 실린 듯
그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다오.
질기디 질긴 비단실로 씨실 날실 걸어 놓고
오락가락 북을 놀려 자나 깨나 베를 짜서
이쪽저쪽 하늘 끝에 매어 구름다리 만들어
그리운 임 보고지고 정다운 임 보고지고
서 서방
엄니 꿈에 처음으로 서 서방이 찾아왔단다. 썩을 놈의 영감은 사흘거리 찾아와서 속을 뒤집어 놓는데. 서 서방하고 부르니 예-에 생시처럼 대답하고 올라와서 엄니가 타준 다방커피를 달게 마시더란다.
엊그제 서서방은 딸내미 낮잠을 깨워 가스 불에 올려놓은 행주가 타는 걸 알려줬단다. 내 꿈엔 언제 오시려나. 서 서방은
9월
하늘바라기
하늘과
땅
당신과 나의 별리
당신 훌훌 빈 몸으로 떠났건만
내 곁에 두고 간 마음이 많아
하늘 까마득히 물러앉으면
내 마음 까치발로 다가가는
하늘바라기
10월
하늘 유리창
누가 저리 닦아 놓았나?
하늘 유리창
우리 님은 내려다보고
나는 치어다보고
눈 시리도록 눈 맞춤 할 수 있겠네.
12월
하늘바라기2
그리움이란 원래 멀리에 있는 것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성마르지 않는 것
나 어느 하늘아래
비 내리는 쓸쓸한 뒷골목을 거닐지라도
서럽지도 두렵지도 않아
저 멀리 아득히 먼 곳에서 굽어보고 지켜주는
든든한 눈길 가슴에 지녔으니.
2015년 1월
넥타이는
한 사내가 먹여살려야할 식솔들의 목숨줄이다.
하루에도 골백번 넥타이를 풀고 싶지만
그리 못하는 것은 자기에게 목메인 식솔들 때문이다.
제 한 몸이라면 꿀리는대로 하겠으나
그도저도 못할 것이 아비로 지아비로 살아갈 멍에때문.
사내가 위선과 비굴에게 고개 숙이는 것도
넥타리를 조여맨 까닭이다.
사내는 날마다 갈망한다.
넥타이 훌훌 풀어버리고 제 홀로 떠나고싶다고.
목울대까지 올라오는 사내의 욕망을
넥타이가 어쩌지 못하게 꽉 움트러 잡고있는 것은
넥타이가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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