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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여행의 추억

908회 통영 -거제 힐링여행

멀리 가는 향기 2018. 9. 1. 14:51

1991년 계몽문학회 1회  세미나에 거제 해금강 외도.

 어머니가 쉰 아홉 .내가 마흔, 아름이 열 살. 승환 12살

2005.7.25 거제 외도

엄니는 중풍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 병 수발로 몸과 마음이 지치셨다.  

유학 중이던 아름이 방학에 여인 삼대가  외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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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이가  기특하게 할머니 모시고  휴가를 보내자 해서  8월4일- 6일 통영, 거제를 둘러 보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 아들집에서 자고  다음날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며느리가 무릎 보호대 채워 드리고  발톱에 페티큐어도 해드렸다.


토요일 오전,   아들 며느리와  터미널로 나왔다.

고속터미널에서 개조카를 만난 아름.

서울에서 통영까지 4시간 10분.

어머니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 보며 콧노래를 부르셨다.


 오후 3시,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나는 전복 가자미 미역국을 보약처럼 먹는데  어머니는 입에 맞지 않아 억지로 드셨다.



강구안 골목 사진관을 보고 아름이가 이바구를 했다.

 SBS 예능 프로 그램 촬영장소라며. 아무개 씨가 지금 촬영 기술을 배우고 있단다.

아름이 베프가<아빠 어디가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방송작가라 컨셉을 의논 했었다고.


게스트 하우스 들어서는데, 동네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할머니를 예쁘게 입혀서 모셔 왔소." 한마디 했다.

어머니가 그 할머니 나이를 물으며 한담.


모텔을 리모델링 해서 프로방스 풍으로 꾸민 게스트 하우스는 건축과 출신 사장님 솜씨.

8월28일 부터 이 집에 sbs  스텝들이 묶기로 했다고.

숙소 예약은 내가 했는데 와서 보니 우연히 얻어걸린 에피소드.


5층 옥상은 이 집의 핫플레이스. 강구안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셋 요트를 타기로 했는데 예약 손님이 넘쳐서 포기.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 미륵산 케이블카 탑승구로 태워다 주었다.


직원들이 휠체어를 내줘서 편안하게 케이블카 탑승.

어머니는  유리다리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셨다.


미륵산 정상의 풍광은 가히 절경이다. 이 절경이 예술가들의 산실이 되지 않았나 싶다.


통영은  문화예술과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전칠기 명장 김봉룡, 연극계의 대부  유치진, 시인 청마 유치환,  서양화가 김용주,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 언어의 마술사 소설가 김용익, 시인 초정 김상옥, 시인 김춘수, 작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이한우, 김형근,  조각가 심문섭 등 한국의 대표예술가가들이 모두 통영출신이다.

예술인들의 생가, 기념관, 미술관, 문학관, 시비, 동상 등을 따라 가다보면 통영 예술 문화지도가 된다.


어머니는  저녁식사도  억지로 드셨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한이 난셔서 보일러를 틀어드렸다.

손이 찬걸 보니 체하신 것 같아 소화제 드리고 손을 따드렸다.

엄니가 에어컨 '이빠이'  틀라하다가  춥다고  에어컨 끄라고... ...

밤새 온탕 냉탕을  오가다 보쌈을 해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니가 내 바지를 입고 계셨다.

굶다시피 하셔서 다리에 힘이 풀린 엄니는 화장실 가려다 옷에 지려 버리신 것이다.

불도 못 켜고 더듬더듬 내 옷을 찾아 입으신 것 .


일어나자 마자 어머니는  집에 가자고 어린애처럼 보채셨다.

"빨리  안가고  뭐드고 있어." 귀찮아 소리를 계속 하셨다.

음식은 입에 안 맞고, 날은 덥고 ,몸은 피곤 하고  짜증이 나신 것이다.

아름이가 재롱을 떨어도 여전히 귀찮아. 소리만 연발.



통영이 낳은 걸출한 예술가들이 많은데, 아름이 한테 구경도 못 시켜 주고 떠나기로 했다.

 터미널 가는 길에 잠깐 내려서  '마술펜' 칭호를 들은 소설가 김용익 선생 생가를 보았다.



거제 지브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서 엄니를 주무시게 했다.

낮잠으로 피로를 푸신 어머니를  유명한 간장게장 집으로 모셨다.


다행히 엄니 입맞에 맞아 해물탕으로 몸보신을 하셨다.

다음 코스는 타이 마사지.

마사지 받는 동안 엄니는 코를 골며 주무셨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눈다랑어 해체 작업 시연회가 있었다.


회 중에서 최고급으로 분류되는 참다랑어는 최대 몸길이 6m, 몸무게 약 2t까지 성장하며   300kg을 넘는것은 특물로 거래

한마리에 18억짜리도. 가다랑어는 가스오부시  만드는데 이용한다고.

일요일 오전,  아름이랑  스튜디오에서 사진 놀이를 했다.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올 해 결혼 40주년이 된다.

어쩌면 남들처럼  리와인드 웨딩 촬영을 했을런지도. 

아름이가 여섯살 무렵  내게 물었다.

엄마, 할머니는 우리 식구인데 왜 외갓집에서 살아?:

"왜 우리 식구야?"

"할머니가 엄마 낳았지, 엄마는 나를 낳았지. 그러니까 우리 식구지.
모계 사회에선 아름이 말이 맞는 말이다.




어머니가 열 아홉 살에 나를 낳았고 나는 서른에 아름이를 낳았다.


엄니가 나도 영정사진 찍어주라 하고 앉으셨다.

사장님 일행과 야외 촬영을 나갔다.

  금계국 필 때는 신선대 일대가 노랑꽃밭이 된다고

'쪄 죽게 생겼는데 용 쓰고 있다'는 엄니 말에 웃음보가 터지고.

바람맞이 언덕이 보이는 곳으로 왔다.


서로 일에 치여 사느라 모녀가 시간를 보내는 일은 드물다.


                                                       .......................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삶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한 삶

                                            역경이 닥쳤을 때든

                                            그것을 극복했을 때든

                                            늘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삶

 

                                                       .......................................

                                                                             (도종환· 한 채의 집을 짓듯이 )


   


 사회와 직장은 질투와 시기의 경합장,  소리없는 전쟁터.  

 경쟁자를 앞서야하는 좌절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

하루에도 수 없이 써보는 마음 속 사표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무기력을 극복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있다.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질시의 입방아에서 자유로워진다.
결국 질투와 시기는 게으른  폐배자의 몫이다.




엄니는 돌아서면 잊어버리실태지만 우리는  이날의 엄니를 오래오래 기억 할 것이다.


점심은 또 꽃게 해물탕.

할머니가 드실수 있는  음식이 몇 가지나 되느냐 물어서 따져보니 15가지.

대병대도 소병대도 매물도 소매물도  자월도  해금강의 섬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바다를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속이 시원하다"셨다.

여든 여섯 해 사시면서  속 답답한 날은 오죽 많았을까?

구비구비 고생길을 이제는 기억에서 지워 버린 어머니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늬 아버지가 그 년하고 사느라 날 안 불러가나 보다" 하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여기서 재미난 구경 많이 하다가  늦게 늦게 가시우"

"아참, 행이야, 나 죽으면 지팡이 꼭 챙겨 넣어라. 그 년  늬 아버지 옆에  있으면 후두러 패주게."

어머니 애증은 눈 감는 순간까지도 지워지지 않을 게다.



아름이에게 수국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는 내 말를 흘려듣지 않고

지브로 사장이 물 수국을 찾아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무명씨

    

아름이는  남에게 주목 받은 걸 싫어하는데,  초등생 때 받은 상처 때문일 거라 짐작 된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 부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엄마표 옷을 입었다.   아름이는 드레스가 일상복이었다.



큰 외삼촌 결혼식 화동

엄마가 만든 옷을 입고 패션쇼 무대에 서고  TV아침 방송에 여러 번 출연했다.

그것이  또래 여자 애들의 시샘을 사 입방아에 올랐다. 

학교에서 글짓기 상을 타면 엄마가 써줬다는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문창과 다닐 때도 엄마가 봐줬다는 억울한 말도 들었다.  그 때뮨에 글쓰는 길을 포기했다.

되도록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한 삶을 살려한다.


그리고 사진 찍히는 것 조차 마다한다.

사실 셀카만 찍어대는 딸애가 안타까워 거제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해 하는  아름이에게  동갑내기 지브로 사장이  말했다

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라고 .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를 추억 할 수있는 어느 날의 기록이라는 것을



오승훈 사진작가가 아름이에게 선물한 <인생 샷>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발레리· 1871-1945)




 


                           갈래머리 소녀가  할머니가 되는 건  잠깐이니까.



거제 해변을 드라이브하다  숙소로 돌아와 스텝들과 이른 저녁을 먹었다. 

 전날 밤 참치 해체 작업 때 남겨둔 회를 안주로 소주잔도 부딪쳤다.


견문이 좁은 사람은 고집이 세다. 개화를 두려워한 수구파처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식주 일상생활이 항상 같다. 

"아침부터 죽을 먹냐"  

빵을 먹을 수도 있고 떡국을, 국수를 , 냉면을 ,고기를 먹을 수도 있는데 끼니 때마다  트집을 잡는 어머니.


체질도 성격도 식성도  다른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하는 일이 쉽지 않다.

'김청이' 소리를 들으면서 엄니를 모시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 어머니가 불쌍해서다.

가시는 날까지 넓은 세상을 느끼고 가셨으면 바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