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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여행의 추억

985회 타이패이 메인역-송산 공항

멀리 가는 향기 2019. 12. 26. 20:33


12층이라 뷰가 좋았다.

나는 여행 할 때 현지인의 아파트를 빌리는데 애들은 잠자리 편해야 한다고 비싼 호텔을 이용하는 모양.


꽃차용 다기들을 사려는데 증선생 가족이 계산을 하러들어서 쇼핑을 못했다.

아침에 아들 내외는 맛집 찾아가서 먹는다기에 ,

아름이 데리고  타이페이 메인역 근처에 있다는 그릇 가게를 찾아갔다.

마음에 썩 드는 다기도 없고 현금만 받는다 해서 현금 있는대로 <개완>을 사왔다.


맛집에 다녀온 아이들은 타이거슈가 흑당버블티 맛집으로.


타이거 슈가 인증샷 도 찍고. ㅋ



12시 공항에서 증선생을 만났다.

증선생이 핸드폰에 써온 편지를  아름이가 읽는데 눈물보가 터졌다.

우리는 2박 3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만리장성을 쌓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떨어지지않는 발길이 이런 것이리.

하루나 이틀 쯤  남아서 돌아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대만 국립 박물관.


대만 국립 박물관 수장고에는 장총통이 본토에서 건너 올 때 극비리에 가져온 전시품들이 많다.

1988년 처음 박물관에 갔을 때 6개월에 한 번씩 전시품들이 교체 된다 들었다.

그때 유빙열이 심한 국보급  대접을 보고  쓴 동화가 <마음이 담긴 도자기>로 초등 6학년 교과서에 실려있다.

 내가 혼자 구경다닌다 해도  증선생 부부가 들러 붙어 가이드할게 뻔해서  그리 하지 못했다.


소영씨가 비행기 안에서 먹으라 고 챙겨준 용과와 구아바.

케익은 보리빵 같은데 쫀득쫀득 맛이 있어 아이들이  나눠 가졌다.


승환이가 러시아 공항에서 사과 한 알로 검색대에서 걸렸다고

소영씨가 사준 흑땅콩과 해바라기 씨를 가져가지 말자 했다.

송산공항 직원에게 물어 보고 가져왔는데 김포 공항 무사히 통과.


대만을 여행 하면서  영국과 일본을 떠올렸다.  

비가 잦고 습한 해양성  기후도 같은데다. 영국사람들처럼 메너 좋고  친절이 몸에 뱄다.  

일본의 좁은 골목길처럼 휴지 한장 없이 깨끗하고 깔끔했다.


미야자키 그림책 마을 여행 때 일본에서 공부한 길지연이 ,

만엔 짜리에 있는 사람이 어린 딸을 영국에 보내 교육을 받게 해서 국민들을 계몽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본은 교통체계부터  양보하고 배려하는 메너까지  영국과 닮았다고.

대만은 일본 식민지 51년동안 자연스레 물든  것이라 세 나라 분위기가 비슷한 것이다.


일본 만엔권 화페의 인물 '후쿠자와 유키치' 1835-1901


'일본 근대화의 문을 연 사상가 계몽주의자 교육자 '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사상적 기초를 가져다 준 원흉'

그에 대한 평가는 일본과 한국에서 양극단이다.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성리학을 배우고 네덜란드와 영어를 배웠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근대 서양 문물의 우수함을 깨닥고  일본으로 돌아와 <서양사정>,

<학문의 권유>, <신여대학 (新女大學> 등 수많은 저서로 계몽운동을 했다.

이일은  조선과 중국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긍정적 부정적인 의미 모두를 포함한다


 그는 개인과 국가의 자주 독립을 위해서는 서양 문명의 도입이 급선무라며, 영국의 입헌정체 실천을 주장.

여성도 인간이라는 여성의 기본권과 여성도 국민이라는 인식을 심기위해 노력했다.

그는 정부,  외세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스스로 깨닫고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고 역설하였다.

당시  반외세 입장이던 막부와 부딪쳐 암살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관리 등용을 거부하고, 학교를 세워 후진 양성하고 신문을 간행하는 등 정부와  독립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저서를 읽고 영향을 받은  조선의 개화파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에게

조선 역시 근대화로 부강한 나라가 될 수있다고 격려한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미개한 나라는 망해도 좋다는  경멸론을 피력한다.




서구화의 바람이 동양을 향해 불어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모든 국가는 서구사회와 더불어 이 운동에 동참하여 문명의 열매를 맛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명은 홍역과 같지만, 여러 이로운 점을 가져다 준다 는 점에서 홍역보다는 이롭다. 그러므로 국가는 문명에 거역할 수 없으며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문명화 과정에서 보수적인 정부 는 걸림돌일 뿐이며 이를 뒤집어야만 일본에서 문명화를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이웃 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번영시킬 시간이 없다. 오히려 그 대오에서 벗어나서 서양의 문명국과 행동을 함께하여 중국, 조선을 접수해야한다. 이웃 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사이좋게 대우해 줄 수 없으며 바로 서양인이 저들을 대하듯이 처분을 하면 될 뿐이다. 


 젊은 시절 그는  <학문의 권유>에서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학문을 갈고 닦는 바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달라 질 수있다" 이야기 했으나,



갑신정변의 실패이후 인민들을 보호하지 못했던 위정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화가나서 조선의 정부를 맹렬히 비판했을 것이다.


           

  미국산 ‘baseball’이 야큐(野球)가 됐다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야구’가 됐을까?

근대 조선은 서양의 발명품을 일본의 번역을 통해 그대로 삼켰다.


 동인도회사를 운영했던 네덜란드는 서구문명과 문물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일본의 근대화 초기 모델이 된다.


 이 때부터 일본의 동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따라잡으려는 몸부림이 시작된다.

 서양 각지로 유학을 떠났던 인물들이 귀국해 서양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후키치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학자들을 이끌고 영어단어를 한자단어로 만드는 사전 편찬을 했다. 이것을  한글로 전환하는 일에 유길준과 주시경 최현배 등이 체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엄연한 사실은 그 동안 반일적인 사회적 정서에 묻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의 번역이 아닌 선진문명에 대한 철저한 해부와 모방이었다.

 동서양이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 살고 있었기에 동양에는 없는 개념들을 번역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선두에 서서 이 일을 맡은 나라가 일본이다. 

 

                                    -중앙 시사 메거진  <우리가 몰랐던 일본 , 일본인> 최치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