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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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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반사

1036회 k-장녀 =유교걸

멀리 가는 향기 2020. 12. 15. 16:54

판대리에서 작업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동생이 편의점에서 땅콩을 사왔다.

 

엄니가 땅콩을 까서 동생에게 주고

 땅콩을 까서 당신 입에 넣고

또 땅콩을 까서 아들 입으로 가고

"에이, 딱딱해서 못 씹겠네"  하시곤 또 동생에게..

"아들만 주고 딸은 안주는겨?"

동생이 한 마디 하니까. 엄니 말씀이.

"딸이니까."

 

아들은 하늘, 딸은 남의 식구. 뼈속 깊은 엄니의 유교

 

딸이 안 모셨으면  혼자된 아들 뒷치닥거리 하며 살림하셨을 양반이.

딸이 없으면  '낙동강 오리 알 신세' 였을 텐데.

아들한테는 양말 한 짝 얻어신지 못해도 날마다 아들타령이다.

 

 

영신 엄마 가 "곁에서 지켜 보니까 형님은 큰어머니 엄마로 살고계셔요."

 듣고보니 그렇다.

 여행 모시고 다니고, 옷과 신발 입성 해드리고, 병원비에 간병에, 궂은 일 다하고

누가 날마다 약 먹어라, 이 닦았냐, 옷 갈아 입어라, 목욕해라. 챙겨주나.

반찬이 맹탕이라 타박하면 좋아하는 해물탕 짜고 맵게 끓여드리고....

 

아버지 딴 살림으로 다섯 자식 건사한 엄니가 안스러워서

고등학교 때부터 집안 살림 도맡았고 혼수도 내가 장만했다.

결혼 하고도 제사나 명절 떄 친정 일을 도맡았다.

아버지 엄니 입원하시면 당연히 내가 간병하는 줄 알았다.

돌이켜 보니 엄니한테서는 친정 어머니가 딸을 챙겨주는 마음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서운하다.

 

그동안 할만큼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엄니 말대로 출가외인으로 살 작정이다.

엄니 병간호는 금쪽같은 아들들한테 맡길 참이다.  보호자 침대서 자는 건 아들도 해 봐야 아니까.

"큰 어머니 상조 들어 놓은 거로 나중에 여행 다녀 오세요.

해 버릇하니까 고맙다는 소리도 못 듣잖아요. 형님도 아들 아들 하셔요?"

천만에 만만에 .

아들은 장가들기 전에 엄마카드 쓴 걸로 땡이다. 나는 뭐든지 며느리하고 통한다.

딸이 하나 더 생겼으니 든든하다. 

 

나는 엄니 사랑은 못 받았어도 아버지 사랑은 넘치게 받았다.

( 멋쟁이 소리 듣던 아버지는 백화점에서 우리형제들 옷을 세트로 사 입히셨다)

 

열살 때 서울로 전학 와서 학교에 적응 못 할까봐,

아버지는 점심 시간에 헐레벌떡 학교에 오셔서 살펴 보시고.

소공동에 있는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고.

골목에서 남동생 친구들과 씨름하면서 놀아주고.

승환이 낳고 까무러쳤을 때 내 팔다리 주무르며 우셨다 했다.

아름이 낳고 힘들어 할 때 보약 지어다 들창으로 던져 주고 휭하니 가셨다.

나는 그 한약을 다려 먹지 못했다.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눈치 보느라.

남편이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한 일로 한밤중에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나 이 사람하고 안 살고 싶어요."

내 맘 다친 거만 생각하고 아버지가 얼마나 놀라셨을지 생각못했다.

다음날 아침에 엄니가 아버지 봉함 편지를 들고 오셨다.

그 뒤로 나는 싸울 일이 있어도 혼자 삭였다.

절대로 친정 부모님이나 시어머니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딸의 사주에 재주가 많다고 '(음향 울리다. 명성) ' 외자로 이름 지어 주셨다.

삼성문학상 시상식에서 "네가 이제 이름값을 하게 될 모양이다"시며 크게 기뻐 하셨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덕분에 해외 번역본 들을 얻게 되었지 싶다.

중풍으로 누워 계실 때 씻겨 드리면 눈을 감아 버리던 아버지.

병석에서 일본노래 흥얼거릴 때마다 아버지랑 일본 여행  다녀오지 못한 걸 후회했다.

그때는 나도 아이들하고 먹고 사느라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아버지한테 받은 게 많은데 정작 해드린 게 없다. 

엄니 고생 시킨 게 미워서 일부러 그랬다. 나는 그게 가슴 아파 아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법 없이도 살 양반이라고 평판 좋게 사셨는데 말년에 마음 고생하셨던 아버지,

친척 어른들이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하면 딸자랑을 하셨다는 팔불출 아버지.

생각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많다.

 

'K-장녀', 코리아(Korea)의 'K'와 맏딸을 의미하는 '장녀' 합성한 유행어. 유교걸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신을 희생하거나 감정적으로 억압받으며 살아온 여성들을 의미한다. 

K-장녀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맏이 콤플렉스'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주로 맏이에게 요구되는 책임감과 가부장적 사회의 전통적인 여성 역할 부담까지 함께 지어지기 때문이다.

 

연구 조사에 따르면 부모를 부양하는 등 전통적인 책임감은 남성보다 훨씬 더 높게 지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h 교수는  "옛 말씀에 '장녀는 살림 밑천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맏딸은 공부도 안 시키고 공장에 가서 돈 벌이하며 형제들 뒷바라지 하고 가계를 도왔다. .그런 인식과 대우 속에 세뇌 당해 스스로 억압하고 순응하며 사는 양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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