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그리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는데 콧물 눈물이 일기를 다 쓰고도 게속 나온다.
"서라워 마라. 희망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
유명자 (84세) 1942년생
친언니 소개로 3살 연상의 신구용씨를 만나 서른 살에 결혼 . 1녀 1남을 얻었다.
서울과 수원에서 살다 남편 고향 간현에 정착.
붉은 벽돌 2층집 마당의 성모상이 눈에 뜨였는데 거실에서 마주 보였다.
남편분이 예초기를 돌려 성모상 주변이 휑하다는 말씀 끝에,
"안에 있으니까 벌레가 생기거나 말거나 상관없는데, 꽃이고 풀이고 싹 깍아버렸어. 아무것도 없이.
그런데 창을 여니 향긋한 풀 냄새가 나는 거야. 그래,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지."
그 연세에 긍정적인 말로 기분 전환을 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유명자 어르신의 일과를 여쭸더니 평화방송 서 너 시간 보고 기도하고 일기 쓰면 행복하다고 하셨다.
날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인데 일기를 꾸준히 쓰신다기에 궁금했더니,
표지에 <치매 3기의 일기 (2)>라고 쓰인 대학 노트를 보여 주었다.
치매 환자는 대부분 자신의 병명을 모르는데 병명을 스스럼없이 말해 놀랐다.
- 침대 발치에 자리한 책상. 2021년 1월 10일 <치매 3기의 일기 1권>을 쓰기 시작, 두툼한 대학 노트 3권 째 기록
우리 어머니도 알츠하이머를 앓으시는지라 도움되는 내용이 있을까 싶어 일기장을 빌려왔다.
일기를 읽으면서 치매로 오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리분별이 또렸하셔서 또 한 번 놀랐다.
대상포진의 통증을 산통에, 전기 고문에 비유하면서 신앙으로 이겨나가는 과정을 세세히 기록했다.
오랜 동안 와상상태여서 물컵을 손으로 쥘 수 없을 정도로 근력이 없었는데 빈 그릇을 주방으로 옮길 정도가 되고 , 근처 산으로 산책을 하고 그곳에서 계절을 느끼며 명상을 하고, 피아노까지 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감동을 했다.
본인의 의지도 대단하지만 폐암을 앓으신 남편분의 보살핌이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치매 3급 유명자 어르신의 일기는 건강한 분들에게도 귀감이 되겠다 싶어 선별해서 옮겼다.
남편은 지정면 부면장의 7남매 중 4남. 나는 네째 며느리로 허술한 셋방도 있고 남편 보호자도 곁에 있고 시동생 둘, 시어머니가 계셔 가난도 행복했다. 그 행복도 잠시 시어머니 모시고 시동생들과 생활 히던 중, 첫 딸 재연이 백일 다음 날 뇌출혈로 쓰러진 시어머니 대소변 수발을 했다. 나는 크리스찬이라 모든 것을 보람으로 받아들이고 힘들지만 열심히 살았다.어려운 것은 웃동서의 시샘이 극복하기 어렵다. 둘째 아들 협이 낳고 병마가 나를 괴롭혔다. 초등학교 입학도 안한 어린 딸의 수발을 받으면서 누워서 사람 노릇 못할 때, 반장이 와서 '주모경'을 해주고 갔다. 다음날 나는 일어났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다시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보지만 손님이 없어 쌀이 떨어질 지경에 의상 공부한 도움으로 수선을 해서 연명하고 재연이가 선화 가겠다고 해서 가게를 물건채 내놓고 상경. 다시 가난이 시작 되고 우울증이 올 것 같아 아이들 돌볼 겨를 없이 수원 대한 어머니 참단에 갔다. 딸이 대학시절 다시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그때 나는 새로운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무엇인지 그 존재 능력을 알 수가 없었다. 15년의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다. 다시 장협착으로 병마와 싸워야 했다. 2. 3개월에 한번 씩 16번이나 삼성병원 응급실에 갔다. 병원에서도 잘 모르겠다해서 5년을 치료한 뒤에 수술을 해보자고 해 열어 보니, 소장이 4군데 막혀 있었다. 한꺼번에 수술할 수 없어 큰 것 10센치만 잘랐다. |
- 집안에 기타, 오카리나, 하프, 피아노 등 악기들이 많았다.
사위가 50만원씩 주는 용돈으로 음악공부에 투자하셨다고.
요즘은 작곡 공부도 하신다는데 펼쳐놓은 악보 중에 '얼마나 아프실까'라는 곡명이 있어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65세에 복음화 공부를 시작 했고. 세 분의 은인 스승을 만났다. 한희교 선생님은 세상에서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 주셨고. 정치우 선생님은 하느님 뜻에 맞는 기도방법을 알려 주셨고, 허은도 선생님은 음악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고 작곡까지 가르쳐 주어 수원에 오피스텔 얻어 공부를 했다. 교회사람들에게 오카리나를 가르쳤고 공부도 하지 못한 맹문이가 성가곡을 맡았다. 2년 동안 대상포진으로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내게 허은도 선생님이 와서 일어나라고 하는데 나는 일어날 수가 없다 하니까 "선생이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야지. 일어나요!" 그때 나는 힘없이 일어났다. "피아노 치세요!" "못쳐요." "선생이 치라면 쳐요." 힘없이 쳤다. "아이, 잘 친다." 그 칭찬에 힘입어 피아노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
하느님의 생각 예수님의 생각을 흉내 내면서 참 평화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간이 1년 정도 지나면서 기도 중에, "이 세상 어떤 것도 내 사랑이 아닌 것이 없다. 내가 너를 지금까지 있는그대로 보아주었듯이 너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라."하는 말씀에 나는 쉽게 "예"하고 말았다. |
나는 결코 추한 모습으로 인생을 마치지 않으려고 잠에서 깨어나면 할 수있는 음악을 하고 있단다. 정말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생을 마치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가진 것이 없으니' 행복. 늘 깨어서 주님의 계획 이끄심 대로 살면 그렇게 되리라 믿고 따른다. 어느 작은 생각 행동도 내 뜻대로 하지않는다. 그러기에는 내 안에 내가 없어야하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니 이제는 행복하다. 오늘도 산입구까지 가는 것이 나의 하루 생활이며 그것이 너무 힘들다. 그래도 가야하니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가 바쁘다. 이제 나는 감사할일만 있으니 그 무엇을 바랄까? 오늘도 이끄심대로 소나무 밑에서 시원한 바람 먹고 명상에 흠뻑 젖어 왔다. 내일을 걱정할 것이 없으니 나는 행복하다. 치매 3기라는 병목을 이기고 승리할 때 모두가 손뼉을 쳐주겠지. |
22년 3월 31일 목요일
5시 기상 기타. 3시 공부
재연아 감사하다.
사위가 주는 용돈은 한 푼도 다른데 쓰지 않고 오직 음악에만 투자했다.
그러기에 오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일만 보고 공부하고 있다.
광명의 새날을 보며 매일의 1분 1초도 소홀하지 않는다.
분명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날이 있으리라 확신하고 10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새 힘을 내고있다. 나는 행운아이다. 음악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희망.
음악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22년 4월 5일
복음화 봉사 할 때 음악 치유를 공부하고 싶어 알아 보았더니 서울 대학교 밖에 가르치지 않는다 해서 포기 하고
성가대에서 기타를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 어려워 포기했는데 병고와 싸우던 중에 누가 기타를 권해서 지금까지 어렵게 왔다.
시골가서 조용히 음악이나 즐기며 살자고 글로리아 합주단을 만들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삭막한 간현에 복음이 싺트는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으면 .
22년 4월 11일 월요일
오늘도 빈 그릇 들고가다 떨어트림.
오늘 자화상을 그리면서 인간의 욕심이 극에 달한다는 나 자신을 본다.
누워있을 때 생각하면 밖으로 나오는 것 만으로 감사해야하고
내복을 입는 것만도 감사해야 한다고하면서 그러던 때가 언제 인가
더 아름다운 곳 예쁜 차림으로 뽐내고 싶은 숨길 수없는 마음이다.
자화상을 그리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는데 콧물 눈물이 일기를 다 쓰고도 게속 나온다.
"서라워 마라 .희망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
22년 4월 12일 화요일
오늘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다. 재연아!
재연이가 최고의 합격을 했단다.
.......... 그때부터 지난 수십년 방랑하고 '카피라이터' ' 드라마 작가'도 포기하고
10년을 집에서 있을 때 내가 어리섰었음에 자책하고 힘들때
엄마가 되어 주지 못 한 점을 항상 죄의식을 느끼며 살았는데
그래도 주님께 의탁하고 고요의 시간에도 너희들의 존재 자체로만 감사할 뿐,
나의 고통의 수많은 날들이 너희들의 아픔이어서 항상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 네가 그랬어.
"나는 엄마하면 아픈 것 밖에 생각이 안 난다" 한 것이 항상 나를 맴돌았단다.
이제 너의 앞길은 탄탄 대로인데 항상 깨어있기를 바란다,
22년 4월 16일 토요일'
대상포진이 시작되면서 산고같은 고통에 전기고문같은 아픔에 엄마! 하느님! 밖에 부를 수가 없었다.
산고에는 가볍게 공소의 발전을 위해 봉사했는데 전기 고문에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고통이 1년을 갔습니다 이제는 가려움의 고통이 왔다. 오늘이 마지막 고문이면 좋겠다.
처음에는 등 반쪽이 가렵고 아팠다. 지금은 온 전신이 가렵다.그때마다 소금마사지로 가려움을 면한다.
돌이켜 볼 때 고문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강도높은 아픔과 동시에 전기 고문 깉은 찌릿찌릿한 고통은 감당할 수가 없다.
이제 죽음의 때가 온 것 같다.'예 ' 이대로 가겠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진 것을 버리고 나니 가볍다.
주님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온 전신이 가려워 아픔보다 견디기 더 어렵다. 그 때마다 소금물로 적시고 나면 견딜 수가 있다.
주님, 나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떻하라고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22년 4월 16일 토요일
양 손으로 물컵을 들고 다님
산 밑에 큰소나무 밑에서 한 30분을 넓은 간현을 내려다 보니 마음이 시원하고 산들 바람은 내 볼을 스치고 간다.
아무 생각 없이 주님 품에 앉았다. 이제 당신께로 가렵니다.
아니다. 내가 할 일이 있다.
생각해 보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래 나는 오뻐를 용서 못하고 있었다.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떠났다
오빠의 죽음 앞에서 발을 돌리고 뒤돌아 나왔다.
주님 !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신부님은 평화방송을 보라 하셨다. 아빠가 입원해 있는 동안 평화방송을 계속 보면서 지루할 때가 있었다.
타방송을 돌리면서 불교 방송을 보게 되었다.
180배 하면서 하나하나 죄를 용서 해달라하는 프로를 보고 과연 나는 저런 죄를 용서를 청했나?
이웃 자연 피조물 벌레 등등 그들의 생명을 소홀히 한 죄의 용서 자연 파괴의 용서 등등 새삼 나 자신을 돌아 보게 되었다.
불자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용서해 달라고 180번 절을 하고 엎디기도 하는데 나는?
그때 깊은 깨달음이 왔다. 비록 신앙은 다르지만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모습에 머리가 숙여진다.
그 많은 사소한 죄를 용서해달라는데
자기 오빠를 용서 못하고도 어떻게 하느님께 가겠는가?
깊이 깨닫고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하느님께 순명하기로 결심 .
22년 4월 18일 월요일 혈압 146-73
우리 산의 입구엔 커다란 소나무 (너무 작게 그렸다)
오늘 처음으로 옷 같은 옷을 입고 산 운동을 갔다.
나무 밑에 있으니 앞이 탁 트인 명당 자리와 수없이 나무 밑을 가면서도 몰랐다.
귓가를 스치는 봄바람은 예전엔 몰랐습니다. 바로 앞에 하이얀 싸리꽃 향이 바람타고 내 후각을 두드린다.
너무 무딘 생활을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소리, 밭가는 트랙터 소리는 자연과 어우러져
누가 그 소리를 시끄럽다하던가?
새 소리는 봄을 즐기는 합창소리. 작은 소리 큰소리 끊어졌다 이어지는 .......
봄바람은 꽃향 풀향을 주고.
22년 5월 9일 ,
요사이는 9시면 자야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일할 때는 긴 밤을 새워가며 준비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뒤로는 수면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10여년 복용하고 나니 기억이 없어지고 치매 3급까지 따게되었다.
22년 5월 25일
이 적은 공간이 내게는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작지만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은 자는 나가서 불가능을 가능 함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보람을 느낀다.
이곳에서 하느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있어 기쁘다. 작지만 바깥세상을 다 들을 수있고 볼 수있어 행복하다.
코로나 때문에 우울증이 온다고하는데 나는 행복하다.
세상에 잘못된 것 보지 않아 행복하고 하루 종일 찬미만 할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이 말을 누가 알까? 진정한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을까?
어두운 세상에서 선택된 장미 한 송이 누가 아름답다 하지 않을까?
22년 6월 25일 토요일
너무 힘들다. 다리에 힘도 없고 걸을 수가 없다. 그동안은 못걸으면 피아노라도 쳤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 된다.
나 어릴 때 이렇게 힘이 없을 때는 아버지가 미꾸리 잡아다가 고아서 그 물을 계속 먹으면 기운이 나던 생각이 나서
아빠한테 미꾸리 탕을 해달라했다.
원주에 나가 굵직한 미꾸리를 많이 사왔다.
손수 소금을 뿌려 해금을 없에고 즉시 고아서 미꾸리 탕을 해 주었다.
먹고 밖에 나가 걷기가 힘들어 화초 손질을 했다.
10시에 잠을 잤다. 깊은 잠을 잤다.
23년 1월 24일 화요일 11시 11분 행복한 날
나는 오늘에사 본인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아빠에게 일생에서 제일 행복하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집나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오피스텔 얻어서 생활비 대주며 불평없이
버스 탈 수있도록 배려해준 것에 감사한다.
쑥스러워하고 묵묵 무답.
그후 오늘 우리는 대화하는 것이 편해지고 의사소통이 잘 된다.
이것이 무엇일까? 칭찬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본다. 그간 나는 칭찬 보다 묵묵히 상대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제 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변화 되어야 할 일이 많다.
1 기다려 주자.
2 서로의 생각을 기대하지 말자. (남녀의 뇌가 다른 것을 몰랐다.)
3 목적이 다른 것을 맞추려 하지말자. 죽음으로 가는 길은 각자 운명이 다르다.
아빠는 오늘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 그래서 한 순간도 사람을 못 보면 괴롭다. 생각이 밖에 있다.
나는 오늘을 보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내일의 희망을 보고 그 길을 달려 고통이 고통이 아니고 행복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외부 사람들은 비참하게 보겠지만 그들은 현실만 보기 때문이다.
23년 1월 24일 화요일
지금 나는 올바로 걷지도 못하고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는 처참한 모습.
모든 것을 포기하고 3개의 머플러와 인조 속치마 만으로 3년간 감기에 걸리지 않고
실내에서 외출도 없어도 밝은 빛 아래서 따뜻하게 즐기고 있다.
왜 이런 행복이 이제 왔을까? 아니 그 행복은 항상 나를 지켜 주었고 보호해주었는데 나는 몰랐다.
간병하는 남편에게 물 달라는 말을 하기도 염치 없다는 아내와
"내가 나가야 당신 공부하지 " 아내를 배려해주는 남편.
살다보니 서로 다름을 인정하게 되고 상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게 되어 사이가 좋아졌다는 노부부.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맨드라미로 프로포즈를 하시라 했더니 기꺼이 포즈를 취하셨다.
서로 다른 환경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부부가 되어 마음 맞춰 해로 하는 일이 행복 아니고 무엇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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