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국립 중앙 박물관 /24.11.30- 25. 3.3
목일신 아동문학상 시상식 마치고 아들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후배 이현숙과 국립중앙 박물관을 찾았다.
현장 매표라 줄서서 기다리다 11시 입장권 획득.
구스타프 클림트에서 에곤 실레까지 오스트리아 분리파 예술가들을 볼 수 있었다.
하나 지역의 소녀/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883년경 클림트가 학생시절에 그린 것으로 배경과 옷을 회색으로 단순화 해서 인물의 표정이 돋보인다.
모자를 쓴여인 / 구스타프 클림트
비엔나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 플뢰게는 클림트의 뮤즈이자 예술적 동반자.
클림트는 그녀의 패션을 즐겨 입었다.
비엔나 분리파 회원은 유럽으로 아시아로 여행하면서 다양한 방면의 예술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에곤 쉴레의 꽈리가 있는 자화상
아버지는 툴른시 역장으로 쉴레의 스케치북을 불태워 버릴 정도로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했다.
쉴레는 내성적이었지만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으로부터 미술 공부를 권유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에는 누드화도 있었다.
아버지가 매독으로 사망한 후 삼촌의 도움으로 1906년 비엔나의 예술공예학교에 진학했다.
소녀의 초상 / 에곤 실레 / 입학하던 해(16세)에 그린 드로잉
1906년 16세 실레는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교수법과 체제에 반발 3년만에 중퇴한다
17살에 그린 자화상.
1911년 자화상
뒤틀린 자세를 한 자신의 모습을 밑그림없이 빠른 붓터치로 그리고 '시인"이란 제목을 붙였다.
어머니와 아이
성모자상을 연상 시키는 어두운 배경 속 아이는 놀란 눈으로 거부의 손짓을 하고 있다.
쉴레와 어머니의 불편한 관계를 보는 듯
아버지가 매독으로 사망했을 떼 쉴레는 14살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바랬고 쉴레는 그림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게르티 실레
실레보다 두살 어린여동생 게르티는 쉴레의 모델로 삶과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와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남매는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서 있는 두 여성
관람자를 돌아보는 듯한 자세의 여성들은 뭐라 말을 거는 듯하다
이 그림은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물려는 쉴레의 의도일지도.
가을숲 /에곤실레
깊어가는 가을 숲을 거니는 듯한 풍경화.
가을색과 액자 프레임이 잘 어울린다.
과장된 꽃과 장식적 배경/ 에곤 실레
배경을 그리지 않은 것은 클림트 화풍의 영향.
금색과 은색 배경에 보라색 과 주홍색으로 아이리스의 특징을 살렸다.
국화 /에곤 실레 (1890-1918)
쉴레가 자신만의 예술 세계로 나아갈 수있도록 길을 열어준 스승 구스타프 클림트의영향을 받아,
검은색 배경에 국화 이미지만 살려 장식효과를 노렸다.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자포니즘과 일본 목판화 특징도 가미 되었다고.
누워있는 누드/ 클림트
클림트 후기작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형태를 간략하게 나타내고 대신 감정을 드러낸 경향의 누드
발레리 뉘질/ 클림트
1911년 쉴레는 한때 클림트의 모델이었고, 자신의 그림 모델이었던 발레리 뉘질과 동거를 시작했다.
둘은 쉴레 어머니의 고향에 정착했으나, 소녀들을 모델로 쓴 것에 분노한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났다.
이후 미성년자 누드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작품은 포르노로 취급되어 압수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에로틱한 그림을 전시한 것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받고 24일간 수감되었다.
푸른 스타킹을 신은 누드/ 에곤 쉴레
스물여덟 살이 많았던 클림트는 예술적으로 실레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그림 구매, 모델 섭외, 후원자 연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쉴레를 후원해 주었다.
두 사람은 평생 가깝게 지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누워있는 여성/ 쉴레
아내 에디트 하름스를 위에서 내려다 본 구도로 그렸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쉴레는 이웃의 중산층 집안의 딸 에디트와 결혼하면서 따뜻하고 헌신적인 내조로 안정감을 찾았다.
비엔나 분리파 전시에 이 작품을 선보였고 처음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해 스페인 독감으로 임신한 아내가 숨지고 3일 후 그도 뒤따랐다.
조용한 여성( 화가 어머니 초상화)/ 안톤 콜리히 1886-1950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밝은 후광을 실루엣 삼아 서 있는 포즈가 인상적이다.
자화상 /막스 오펜하우머
의심이 많은 눈초리와 깡마른 손가락을 강조했다.
인물의 내면을 뒤틀린 형태와 대담한 색채로 표현 했다.
호숫가의 남녀/ 에른스트 슈퇴어 (1860-1917)
화면을 채운 파란빛과 청보라색 배경과 여인의 의상이 메치되면서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들은 산그리메 어린 물을 내려다 보며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자수로 표현하고 싶은 정경.
요제프 호프만
"언젠가는 생필품도 예술가에게 주문하는 날이 올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관객을 흐뭇하게 바라 보았다.
어려서 부터 부모와 함께 미술관 관람을 한 아이들은 저절로 예술적소양을 쌓게 된다.
저 아이들에게 빌려 온 세상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말았으면.
헤라클레스가 길을 가는데 사과 만한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그걸 걷어찼더니 두 배로 커졌다.
그래서 더 세게 짓밟고 몽둥이로 쳤다.
열매는 집채만 하게 부풀어 아예 길을 막아버렸다.
헤라클레스가 망연자실해 있는데 아테나 여신이 말했다.
“그만 하세요. 그것은 경쟁과 분쟁인데 건드리지 않으면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싸움을 걸면 이렇게 부풀어 오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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