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거 무섭다 해도 사람 죽은 게 제일 무서워. 내가 죽어야 잊어버릴 거 아니유. 죽을 때까지 가슴에 담아가유.
신순자 82세. 43년 횡성군 공근면 행정리에서 태어났다. 19살에 8년 연상 남궁운씨와 중매 결혼. 시집살이 3년만에 용문에서 간현으로 분가했다. 삼형제 낳아 둘째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중앙시장 정류장에서 간현 버스 멀었나요? 묻는 할머니가 계셨다. 설 차례 음식 장만하러 오셨다는데 틀니도 없이 흔한 패딩도 못 입으셨다. 몇마디 나누는 동안 측은 지심이 생겼다. 점심을 간현경로당에서 드신다해서 시간 내서 찾아뵈었다.
왼쪽 눈 시력을 잃고 청력도 안좋아 큰 소리로 동문서답 했다. 우울증에 경도인지 장애가 와서 힘든 인터뷰였다. 아픈 기억을 들추느라 입이 바싹 말라 수없이 숭늉을 드셨고, 주먹으로 가슴 치며 눈시울 적셔서 안아주고 토닥이며 이야기를 끌어냈다.
중매쟁이한테 속아서 시집 왔어요. 살아보니 다 거짓말이야. 나는 일로 살았어요. 일하느라 잠도 못자고 날밤 샜잖아. 내가 벌어 먹고 살고 부끄러운 소리지만 큰아들을 중학교도 못 가르쳤어요. 아휴...... 내가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요.
둘째가 어려서 많이 아팠어요. 댓살때 해만 지면 눈이 안보여. 숟갈도 못 찾았어요. 어휴...... 저기 군복입은 애가 둘째요. 휴가 나왔을 때 . 저 사진 밖에 없어 . 어려서 고생을 많이 했어. 내가 눈물도 많이 짜고 .
우리 둘째 간신히 살려서 군인까지 보냈어요. 백골부대 갔는데 사람들이 거기가 엄청 쎈대라 하더라고. 나라를 삼년 지키다왔는데. 군인 마치고 와서 잊어 버린 사람 모양 멍하니 앉아 있고 자꾸 집을 나가. 붙들어다 놓으면 나가고 . 동네 사람이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고 . 그러니까 머리가 돌았어요. 부모 복 없이 돈도 없는 집에 나서 병원도 못 데려가고.
아휴........ 나 안 할래요.
우리 아들 얘기하면 울음이 나고 여기가 막 아파. ( 심신 미약 청년이 군기로 악명 높은 군대서 시달리다 정신 이상 된 것을, 부모가 알아차리지 못해 보상도 못 받고 죽게 만든 것이 원통하고 절통하신 것이다. )
우리 아들 마흔 아홉에 갔어요. 행방불명 됐는데 즤 아버지 고향 뒷산에서 나물 캐던 사람이 뼈하고 가죽만 있는 거 찾아줘서 우리 큰 아들이 혼났지요. 제 동생 이렇게 저렇게 해가지고 화장 시키고. 여기 복장이 터져 . (안아주고 토닥토닥)
무서운게 많다 해도 불난 거 무섭다 해도 사람 죽은 게 제일 무서워. 내가 죽어야 잊어버릴 거 아니유. 죽을 때 까지 가슴에 담아가유. 명절 때 우리 아들 삼형제 옆드려 절 올리면 보기 좋아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두 형제만 남아 이가 빠졌잖아요. 그 놈이 나한테 잘했어. 깔깔깔 웃기도 잘해. 웃는게 그렇게 이뻐. 그때 생각이 자꾸 나. 아이고 너는 여자가 될 걸 남자가 됐나 보다했어요. 여자로 태어났으면 내가 덜 폭폭할 건데. 나 살아온 이야기 책을 만들면 하늘에 닿아도 보자라요.
-어르신 꽃단장 시키는데 그 비싼 거를 왜 나한테 발라요. 쬐금만 발라요. 시집 올 때 화장하고 첨이네. 평생 로션도 없이 사셨단다. 누가 사진이나 찍어줬나. 출세했네.
일곱인가 여덟살인가 6.25 나서 피난 갔어요. 우리 언니 어깨에다 이불 하나 얹어 주고 걸어가라하고 나도 메고 따라가면서 충청도 괴산까지 갔어요. 가다가 빈 집 있으면 쉬고 굶다시피했지. 가을인가 저런 밭에 댕기니까 냉이 알지요. 엄청 나요. 뿌리가 손가락 보다 더 길어요. 캐면서 입으로 다 들어가. 씻을 새 없이 먹었어요.
그걸 많이 먹어 그런지 고생을 많이해서 그런지 한쪽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어두워. 여럿이 있는데 못 가 . 누가 저이 귀먹었어 흉보는 것 같아 못 있겠더라고요.
내가 글을 배웠으면 자세하게 쓸텐데 그거 보고 울지 않을 사람 없을거여. 내가 공부 못해 가지고 그 애기를 다 못해요.
우리 아버지가 딸만 다섯이유, 옛날엔 아들 낳아야 좋지 딸은 시세가 없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상가집에 다녀오면 누구는 아들이 몇이나 베옷 입고 따라가더라 나만 자식이 없어. 신세한탄 하고 울어. 이렇게 발로 방바닥을 탕탕 차면서 나는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하고 울어요. 딸이 다섯이나 있는데 사람으로 치지 않아요.
아들 못낳은 엄마가 죄인이여. 엄마가 듣다 듣다 못해 당신만 없어 나는 있나하면 당신은 딸이 다섯이나 있잖아 하고. 내 딸만 되고 당신 딸은 안되나 입씨름하다가 막 때려 . 그러면 딸 서이 너이가 막 뜯어말리네. 아버지 데리고 가는 딸, 엄마 숨기며 엄마 말 좀 하지 말어 이러구. 그래서 우리는 아들에 포원이 져가지고 재산도 안 부럽고 그저 아들만 부러운거요.
아버지는 내가 죽으면 내 성을 내가 자르고 간다고. 대가 끊긴다고 슬퍼했어요. 친구들이나 동네사람들이 순자아버지라고 부르면 좋잖아. 작은 아버지 자식 이름으로 원손이 큰아버지 원일이 큰아버지래 . 그러니 우리 아버지가 속이 상하는 거지. 딸은 필요 없어요. 그래도 이놈의 지지배들 욕은 안해요. 생각을 해봐요.
그 고역을 열 살부터 열 아홉까지 스트레스를 받았어. 집안에 웃을 일이 있어야 기분이 좋고 얼굴이 화다닥 피잖아요. 만날 겁에 질리고 속상하고 시집 올 때까지 그러고 살았어요.
열 여덟부터 중매가 들어 왔어요. 머리 땋아서 늘이고 하얀 저고리에 깜장 치마 입고 학교 가면 곧이 들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지만 삼 부락에서 제일 이쁘다 했어요. 학교도 졸업 못했어요 어깨 넘어로 배운거지 . 글도 많이 몰라요.
중매쟁이 말에 속아 8살 차이나는 양평군 용문면 중원리 사람하고 혼인했어요. 사람들만 좋지 찢어지게 가난해. 시어머니는 딸 낳으려고 낳다보니 아들만 칠 형제 낳았는데 홍역하다 죽고 마마걸려 죽고 오 형제가 된거지.
친정 엄마는 딸만 다섯이고 참 고르지도 못해. 시아버지 돌아가셔서 아들 다섯이 누렇게 망건 쓰고 베옷입고 상여 죽 따라가는데 참 보기 좋더라고.
우리 아버지는 장손이여. 콩이고 팥이고 추렴해서 사십리 걸어가서 장 봐오구 철철이 제사 잘 지내요. 내 생전에 엄마 아버지 제사 지내는데 나 죽으면 누가 하는 사람도 없다 그거야. 얼마나 슬퍼요. 아하 슬퍼요. 지금 작은 아버지가 제사 지내지.
우리 아버지 제사 누가 지내나요? 대가 끊겨 아무 것도 없잖아. 아버지 손이 없는데 아이고 이게 뭐여. 아버지 제사는 둘째 딸이 지내 주마 했더니 외손 봉사는 아예 안 된다. 외손 봉사하면 늬가 못 산다. 그건 아니다. 그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우리 신랑이 우리 아버지한테 잘해요. 지내면 지내겠는데 외손 봉사 안된다해서 못 지내요. 그냥 금초만 우리 신랑 참 잘하죠. 팔월 보름 정월 초하루면 산소 해마다 쫒아가요. 장인한테 그렇게 잘해서 우리 아버지가 사위하테 홀딱 반했어.
- 눈 배경으로 사진 찍어드리려고 모시고 나가 내 옷을 입혀 드렸더니 호강한다며 웃으셨다.
우리 시댁 식구들은 마음은 다 착해요. 오형제가 한문은 다 알어. 우리 시아버지가 한문 선생님이었어요. 광목 바지저고리 입고 이렇게 해가지고 장구대 기다란거 들고 학생들 열댓명 앉혀 놓고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루황 (가부좌 틀고 앉아 흔들흔들 천자문 외는 시늉) 내가 물 길러 오고가면서 듣고 외웠어. 왠만한 거 다 알았는데 엄청 속상해서 자꾸 울고 하니까 잊어 버렸어.
친정에서 물이나 여 봤나. 우물이 멀어요. 오지동이 이고 살살 가만히 오는데 바가지가 둥당둥당 하면서 물이 쏟아져서 옷이 다젖어. 집에 와보면 반 동이 밖에 안돼. 항아리 채워야지 솥에 부어야지 학생들 물 줘야지 ... 어휴.
시레기 말려서 국 끓여 학생들 갖다 줘요. 그러면 뜨끈한 국물에 도시락 말아서 먹어. 아버님은 뭐든지 혼자 먹으면 안됀다 애들 넉넉히 퍼다줘라 하시지. 학생들을 자식보다 더 위해. 뭐든지 생기면 학생들 먹여.
그때는 워낙 없어서요. 학생들 1년 배우는데 쌀 닷말 줘 . 식구가 열 둘이니 앉아있을 새가 없어. 아침 먹고 물 몇 번 여다 보면 점심 해야돼. 솔갈퀴 분질러서 불 때다 오뉴월이면 밀보리 타작해서 말린 거 때고 참, 아이고..... 여북하면 누가 나 삼시 세끼 밥 좀 해주면 좋겠다 원을 했을까.
우리 시어머니는 대접 받다 돌아가셨잖아요. 삼시 세끼 밥 착착 갖다 드리고 빨래 빨아서 장롱에 개어 넣었다 착 갖다드리고 버선 챙기고 고무신 싹 닦아서 대령하고 우린 그렇게 하는 법인줄 알고 살았어. 시방 며느리들은 몰라. 반의 반도 못해. 우리 며느리 명절 때 뭐 좀하다가 아유 이유 허리야. 아유 그까짓 걸 하고. 힘들게 하는 게 뭐 있어.
우리는 못된 시대에 태어나서 그렇쥬? 변변한 것도 못 먹고 겨울에 추운데 무명 옷 입고 일만 죽어라고 하고. 기가 막혀. 요새 태어났으면 고생 않고 편하게 살텐데 . 3년을 시집살다 여기로 이사 왔어요.
우리 애들아버지는 예순 여덟인가 먹어서 9월 9일 제비가 고향 가는 날 회관에서 관광시켜준다해서 갔다 왔어요. 저녁 차려요 하니까 저녁 주던데 하고 일찍 누워자고. 여덟시인가 오줌누러 가다가 여기 이 자리서 자빠졌어요. 머리가 깨져서 피가 막 나와. 수건이 축축하게 젖도록 . 그 자리서 간거야. 아프지도 않고요. 그때 놀랬주 우리 아들 죽어 놀랬주.
좋은 때가 없었어. 고생만 하고 일로만 살아서. 요새 혼자 사나까 외롭고 슬퍼 . 열 두 식구 살던 때가 자꾸 생각나. 그땐 몸이 고달퍼도 재미나잖아. 밥도 여러 식구 함께 먹고. 이게 사는 건가? 슬쓸하고 외롭고 재미도 없고 이건 밤이나 낮이나 말 한마디 해보나. 사니가 사는 거지 사는 게 아니야.
남들이 딸자랑하면 왜 나는 딸이 없을까 싶은 게. 아들만 낳아서 좋다고 했는데 마누라 얻고 망가지네. 여편네가 너무 억셔서 말도 안해요. 아후..... 하난 또 오지도 않죠. 설에 시아버지 제사 차려야잖아. 막내는 시내버스 기사라 못 와. 여태 안 왔어.
아유, 딸이 부러워. 우리 며느리도 즤 친정부모한텐 잘 하것지? 손자 일곱살까지 내가 키워줬는데 그 애들 다 컷는데 안와요. 얼굴도 몰라. 내가 죽어 몇 달 썩어도 모를거야. 애들은 안 오니까 죽어도 모르지. 밤마다 혼자 울어요.
내가 일만 하느라 화투를 못 배워 고스톱 못해요. 경로당 가면 놀지 못해요. 혼자 심심하면 화투갖고 놀아요. 민화투 알아요? 나하고 할래요? 아이고, 나보다 화투 못치는 사람도 있네. 저도 일만 하느라 화투를 못 배웠어요.
외롭고 쓸쓸하고 심심한 할머니랑 민화투를 쳤다. 눈길에 미끄러져서 옆구리가 아프다셨다. 마침 선물 받은 안마기를 가져갔기에 안마기 마사지 해드렸다. 설명서 보고 사용법 알려 드리고.
대보름이라 경로당 가서 저녁 드신다해서 함께 나왔다.
"날마다 경로당 가서 식사 하셔요. 안가시면 편찮으신가 보다고 누구든 찾아 올거에요."
실버카 끌고 가던 할머니가 "사진 뽑아 가지고 또 오시우" 하셨다. 암요. 고운 모습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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