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공 보다 물 부족이 더 무서웠어요.
이문승 (78세) 47년생.
춘천에서 태어나 상주로 피난갔다가 원주 간현에 정착 . 처 삼촌 소개로 아내를 만나 1녀 3남을 키웠다.
늦더위로 비 오듯 땀이 쏟아지던 날, 지정면 이문승 노인회장 댁을 방문했다.
대문간 허드렛 창고 앞이 단정하게 정리 되었다. 차고 시렁 위로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고 거실 창문 앞 석류가 탐스럽게 달렸다. 석류나무가 얼지 않도록 볏짚으로 싸고 비닐을 덮어 보온해주는 손길 덕이다. 대문 앞 란타나는 몽둥이 굵기 외목대로 자라 일곱까지 색깔로 꽃 피어 오가는 이의 눈을 호강 시킨다.
거실에서 에어컨 바람으로 더위를 식힌다음, 연주실이란 명패가 달린 방을 구경했다.
3개의 색소폰과 기타, 아코디언과 음향기기들이 자리한 방. 정년후 배우기 시작한 취미 생활 공간이다.
색소폰 동아리 단원들과 재능기부 연주회를 한다 해서 색소폰 연주와 5년 째 연습해도 어렵다는 아코디언 연주도 부탁했다.
"원주 토박이세요?"
6.25 때 춘천서 경상도 상주로 피났갔어요. 여섯 살 때 원주로 올라와 간현에 정착 했고요. 초등 2학년 때 할아버지는 여기 계시고 아버지는 문막 대둔리로 이사했어요. 분교라서 4학년 마치고 여기 와서 국민학교 마쳤어요. 중학교는 기술학교를 다녔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2학년 때 중퇴하고 고등학교는 통신 강의로 마쳤어요. 파란만장한 얘기를 다해야하나?
"아니죠. 생각나는대로 말씀해주세요."
성장과정은 그렇고 군대를 월남으로 갔어요. 월남서 갖은 고생 다하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월남에서 힘들었던 얘기도 해주세요."
작전 나가면 물부족이 제일 힘들었어요. 첩보에 의해 베트공 중대가 있다 하면 작전 나가는데 산봉우리에 폭격을 해서 나무를 싹 태워 버리고 거기다 랜딩을 해줘요. 산꼭대기에 믈이 없잖아요. 중무장하고 앞에 두 개 뒤에 두 개 수통 차고 식량 씨레이션 박스 짊어지면 3-40 킬로 돼요. 열대 밀림 속을 수색하다보면 죽을 맛이야.
땀으로 범벅이 되면 옷에 하얗게 소금이 엉겨붙는데 어디가서 씼을 데도 없어. 물이 떨어지면 수통 뚜껑으로 얻어먹는데 겨우 입술만 적셔. 그러다 계곡 만나면 엎드려서 물을 막 빨아 먹는거야. 물 부족하면 죽으니까 베트공 만나는 것 보다 물 부족이 제일 무서웠어요.
72년에 제대 하고 12월에 결혼을 했어요. 월남에서 벌어 온 거로 땅 사놓고 먹고 살게 없으니까 막노동도 하고. 그러다 유원지 들어가서 장사를 시작했지. 내가 간현 유원지 개발자야. 장사하다보니 애가 커가는데 그때만 해도 배 아니면 다닐 길이 없었어. 장마 때는 철길로 다녔다고. 큰 애가 커가는데 애들 학교 다닐 때 위험해서 안되겠더라고 동생한테 물려주고 우체국에 들어갔지. 25년 근무하다 퇴직하고 나왔어요. 나와서 뭔가 배워야잖아요. 찾다보니까 취미활동으로 원주대학에 다니면서 색소폰을 배운 거야. 시민문화센터도 나니고 2년 간 네 다섯 명의 선생님한테 배운 거 같아. 색소폰이 어느 정도 터득이 되니까 욕심이 나더라고 아코디온을 시작 해가지고 5년 되었지만 아직 길이 멀었어요.
지금은 농사 좀 지으면서 취미 생활만 해요. 우리 애들도 다 잘 되서 잘 살고 있고요. 큰 사위는 대학교수고 아들은 큰 기업체 부사장으로 있고. 애들이 자력으로 성공했어요. 이렇게 아내하고 둘이서 다복하게 사는게 인생 종착역이에요.
집사람도 건강하고 아직까지 아픈데 없이 건강하니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안해봤어요. 혹시나 나중에라도 산소 마스크 쓰고 연명하게 될까봐 그렇게 되면 서로 못할 짓이라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다 써놨어요.
"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예요?"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그동안에는 공무원 보수가 얼마 안되잖아요. 애들 넷을 대학 가르치다 보니까 아들이 군에 갔다오면 대학생이 둘 씩 되고 그러는데 살기 힘들었어요. 우체국에는 내가 노력하면 보수 외에 보험이나 예금 같은 걸 예치 시키면 수당이 있어요. 어디 누가 땅을 팔아서 돈이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사정사정해서 예치시키고 수당을 받았어요. 그렇게 충당해서 넉넉하게 살았어요.
퇴직하고 나서 집짓고, 퇴직연금하고 보훈부에서 나오는 국가 유공자 연금이 있으니까 사는데 지장이 없어요. 월남 참전유공자라고 도에서 시에서 돈이 나오고 고엽제 피해는 없지만 고혈압하고 고지혈증 약을 먹으니까 보훈부에서도 나와요. 등급받느라고 보훈병원에 갔다가 고엽제 후유증 치료 받으러 온 내외를 만났는데 자기 신랑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소릴하더리고요. 오죽하면 그런 말을 하겠냐고요. 고엽제 피해 없는 걸 감사해야죠.
" 다시 젊어지신다면 해보고싶으신 게 뭘까요?"
학교 다니면서 공부 좀 남부럽지 않게 하고 싶어요. 우리는 사립학교여서 교납금 못내면 교무실에 끌려가서 지휘봉으로 머리가 이렇게 붓도록 맞았어요. 선생들 월급을 못 주니까 교무실에 꿇어 앉히고 수업도 못 받고 그랬어요. 집에서 돈 안 주니까 교실에 들어기지도 못하고 맨날 얻어 터지니까 2학년 때그만 뒀지.
요즘 시대에 태어난다면 좋은 부모 만나서 대학교도 다녀보고싶어요. 색소폰 배우느라 원주대학 다닐 때 이년 반 중국어 배었어요. 남들은 대학 문턱에도 못가 봤다는 데 나는 이년 반은 다녔으니까. ㅎㅎ 중국어 어려워요. 발음을 영어로 가르치니까 지금은 다까먹었지만. 부동산도 공부하고 싶고 별걸 다 하고 싶은 데 시간이 없어요.
내일 모래 연주 모임있고 섬강축제 때 공연 연습도 해야 해요. 그때 놀러오세요. 여기저기 아코디언 색소폰 쫒아다녀야지. 가는데 마다 모임 책임자로 뽑혀서 빠질 수도 없어요. 회장감은 따논 당상인지 나보다 학벌도 좋고 고등학교 교장 출신 소방소장 출신들이 있는데도 나를 회장으로 뽑아 줬어요. 경로당 회장 지정면 노인회장 하지 그래서 바빠요.
노인회장은 면단위 지역행사가 있을 때 의전 서열 윗자리에 앉는다. 노인 회장은 지역 일에 앞장서는 정보통이고 활동가기 때문이다.
이문승 노인회장은 가난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사나이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닮아 자력으로 성공을 한 것을 대견해 할 만하다.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 못한다는 말처럼 열정도 넘치는 분이다.
정년 이후 제 2의 삶을 사느라 바쁜 양반. 의욕이 넘처 일복도 많으니 회춘은 따논 당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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