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한의원에 가신 어머니가 늦으셨다.
걱정하던 터에 남동생이 어머니 기척에 달려나갔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고들빼기를 잔뜩 캐오셨기 때문이다.
한번은 어두워졌는데도 안 돌아오시기에 정류장에 나가 기다렸는데
매실을 잔뜩 지고 오셔서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못말리는 박여사다.
구파발역에서 레미안 단지로 걸어오시다가 휀스 처놓은 곳에서 고들빼기를 발견하셨단다.
아직도 많다며 조카 며느리 불러서 가시겠단다. 아주 싹쓸이를 하실 모양이다.
엄니는 일손이 빨라 세사람 몫은 하신다.
오늘 아침 항암나물로 알려진 고들빼기 겉절이로 건강식......
지난 봄, 어머니는 봄나물은 약이라고 부지런이 켜다 걷어 먹이셨다. 아픈 다리 절룩거리시며...
엄니는 나보라고 꽃 한 두송이도 캐오신다. 엄니가 나물 다듬는 동안 얼른 달래전 부처 드렸다.
이른 봄이면 나물캐느라 바쁘고 늦봄에는 앵두,매실 ,살구 따오느라 바쁘시다.
지금도 밤송이 벌어질 날만 손꼽아 기다리신다.
배낭으로 가득가득 져나르셨다가 이집저집 퍼주는 재미에 다리 아픈 것도 참아내신다.
륭이가 어렸을 때 손톱이 길었기에 할머니가 뭐하느라 손톱도 안깍아주셨을꼬 했더니.
'할머니 눈에는 밤 밖에 안 보여 "해서 한 바탕 웃었다.
밤송이 벌 때 쯤이면 어머니는 꿈에도 밤을 서너 말 씩 주우신단다.
기자촌 살 때 어머니는 "고향집 할머니'로 불리셨다..
손 큰 엄니 때문에 이웃 아주머니들이 고향집 드나 들듯 엄니 밥 많이 먹었다.
온 몸에 파스를 붙이고 사는 엄니는 황소처럼 일만 하신다.
노인정에 다니시래도 여편네들 모여앉아 남 숭보는 거 꼴보기 싫다며 마다신다.
기자촌 시절, 엄니가 농사지은 텃밭 채소 덕분에 우리 집에 내 손님과 남동생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지인들은 가끔 '선생님 기자촌 살 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북한산 등산하고 내려와서 마당에서 고기 구어 먹어도 이웃 눈치 안보고 놀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음식도 창작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음식만드는 게 재미있다.
그때그때 아이디어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즐겁다.
지인들은 나를 '파티여왕'이라 부른다.
솔직히 재료 장만하고 다듬고 조리 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손님들이 맛나게 먹어주고 즐거워하면 피로가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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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들빼기 마저 캐오시겠다고 나간 엄니가 그제 나물 캔곳이 생각나지 않아 삼송리까지 다녀오셨단다.
얼른 엄니 모시고 병천순대집 가는데 어딘지 모르시겠다고 했다.
엄니 목에 목걸이 달아드려야겠다고 우스갯 소리 했지만 걱정이 된다.
나는 엄니가 매실을 따거나 밤을 져 오신 날은 엄니가 좋아하는 돼지 갈비집이나 순대국집으로 모신다.
기운 떨어지실까봐 걱정 되기 때문이다.
순대국을 드시는 엄니 손가락에 상처가 나고 손바닥엔 물집이 잡혀 있었다.
'자꾸 이점이 흐려진다'는 엄니 때문에 오늘 나는 눈물 젖은 순댓국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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