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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449회 몽골인형

멀리 가는 향기 2013. 8. 5. 10:30

 

 

 

2011년 <멀리가는 향기> 몽골 봉사 여행 때 일이다.

도로가 움푹 패여 돌맹이로 메우고 버스가 지나가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돌멩이를 주우러 다니던 아이들이  인형을 발견했다고 소리쳤다.

 

 세상에!

어쩌다가 초원에 버려졌니?

 

                  벌거숭이로 낮과 밤의 혹독한 일교차를 견디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꼬.

 

                       아이들이 김향이 선생님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우리 눈에 뜨인 건 필시  인연이 있었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  손 봐줄 짬을 못 내다가 오늘 맘먹고 옷을 지어주기로 했다.

명주로 속곳을 만들어입히고

 

 

                              몽골 전통의상 델을 만들기로 했다.

 

 

 

 

손바닥 크기의 델 이 완성되었다.

장화도 만들어 신기고

 

무명실로 만든 머리카락에. 뜨게실로 모자 만들고 비즈로 장식을 했다.

 

                         몽골 소녀답게  자태가 다부지다

 

몽골 소녀에게 체체크(꽃)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월간 소년 >에 연재 중인 작품 제목도 주인공 이름을 따서  체체크다.

체체크는 꽃처럼 어여삐 자라서 자식 낳고 살림 일구며 살라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못마땅한,

당차고 책임감 강한 만두하이 후손이다. 

 

 

미국 매칼레스터대의 인류학 교수인 잭 웨더포드는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이 동서 문명 교류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갖고

1998년 칭기스 칸의 고향인 부르칸 칼둔 산을 방문했다.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는 몽골 역사의 베일 뒤에 있던 사실들을 알려준다.

바로 몽골 여성 왕족의 활약상이다.

칭기스 칸은 제국을 세웠지만, 그의 아들들은 술 마시는 재능만 있을 뿐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칭기스 칸의 뒤를 이어 제국을 움직인 것은  그의 딸과 며느리들이었다.

13세기 후반, 미지의 검열자가 <몽골비사>의 한 부분을 삭제했다.

 칭기스 칸의 발언을 기록한 이 책은 훗날 제국의 기본 법률 역할을 했고, 더 먼 훗날에는 사료가 됐다.

잘려나간 부분은 1206년의 발언이었다. 검열자는 실수인지 악의인지 삭제분에 들어있던 한 문장만을 남겨두었다.

 “우리의 여자 후손들을 칭송하기로 하자.”

삭제분의 바로 앞에는 칭기스 칸의 아들, 형제 등의 능력, 공적에 따라 관직과 영지를 수여하는 대목이 있으니,

삭제된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칭기스 칸의 딸들이 다스린 왕국들은 영토 확장에 목매지 않았다.

대신 중요 접촉 지점과 이동 방향을 예측해 그곳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실크로드 상권을 장악한 이들은 제국이라기보다는 현대의 다국적기업에 가까웠다.

그들은 다른 자매들의 나라에서 나오는 물품에 일정 지분을 갖고 있었다.


칭기스 칸의 정신은 그가 죽은 지 200여년 뒤 부활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여성의 몸에 깃들어 있었다.

 웨더포드는 1998년 몽골 현지 조사 과정에서 어느 노파의 말을 들었다.

“당신은 칭기스 칸이 여자로 환생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그렇게 환생한 분이 우리의 왕비 만두하이랍니다.”

만두하이는 16세의 나이에 25세 연상의 만둘 칸과 결혼했다.

당시 제국은 전성기를 지난 상태였고 늙은 칸은  죽었다, 23세의 만두하이는 과부가 됐다.
만두하이는 재혼을 권하는 측근의 머리 위로 뜨거운 찻잔을 내던졌다.

그리고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제국을 이끌겠다고 결심했다.

만두하이는 칸의 핏줄을 이은 다섯살 아이 바투 뭉케를 찾아냈다.

외진 곳에서 방치된 채로 자라난 아이는 허약했다.

바투 뭉케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대칸 즉위식을 올리고 섭정했다. 
적들은 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고, 백성들은 지도자의 능력을 못미더워했다.

만두하이는 군사와 정치 양 분야에서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젊은 왕비는 첫 원정을 나서기 위해 머리 장식을 벗고 말 위에 올랐다.

병약하고 어린 다얀 칸은 작은  상자에 담겨 말에 올랐다.  만두하이는 칸을 전장에 동행시킨 것이다.

 누가 전투를 이끄는지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만두하이는 성인이 된 다얀 칸과 결혼했다.

 

그들은 적들을 차례로 제압했으나 불필요한 복수는 하지 않았다.

많은 아들들을 낳아 동맹 세력인 다른 부족 사이에서 자라게 했다.

아들들은 그곳의 소식을 전해왔고, 자연스럽게 다른 부족도 통치했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서로를 제거하고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둘은 자발적으로 해로했다.

몽골연대기에 의하면,

“하늘은 그녀(만두하이)에게 위대한 운명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하늘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운명’을 만들어나가도록 허용했다.”


부흐(레슬링)에서 자기를 이기는 남자하고만 결혼하겠다고 한 몽골 여전사  쿠툴룬 공주의 이야기는 

투란도트(투르크의 딸)로 서유럽에서 공연 됐다. 이 호랑이 같은 여인에 대해 실러, 괴테, 푸치니가 관심을 갖고 작품을 남겼다.

 몽골남자들은  부흐를 하기 전에 상체가 노출되도록 특별한 조끼를 입는데

상대방이 남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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