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같은 날 부산의 김재원 배익천 선배님이 보내주신 선물이 왔다.
범초산장을 가꾸는데 하루도 여념이없는 김재원 선생은 풀과 나무의 이름 뿐 아니라 약성까지 두루 꿰신다.
계몽 문학 기행 때 뵈면 언제 어디서나 씨앗을 모으고 계셨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은 꽃씨로 산장을 가꾸고 계신다.
내가 아파트를 떠날 때가 되었다니 꽃씨를 보내주신 것이다.
배익천 선배님은 고성에 동시동화나무 숲을 가꾸고 계시는데 누가 그 열성을 따라갈까? 손수 바위도 옮기고 후배들 이름표를 단 나무들을 심느라 몸이 부서질 정도. 문학하는 후배들 챙기는 선생님의 오지랖은 넉넉하다 못 해 차고넘친다. 생전 남을 미워 할 줄도 시기질투로 음해 할 줄도 모르는 선생님은 보름달 같다. 늦은 밤 선배의 동화를 읽다가 그의 말투로 읽어주는 듯한 환청을 들었다. 글은 그사람이라더니 동화도 영락없이 닮았다.
나도 두 분 선배들처럼 시골에 내려가 그동안 내가 원하고 바라는 삶을 위해 손톱에 흙칠하고 살게 되었다.
2015년 8월 유럽여행 중에 영국의 코츠월드에서 남동생이 수집한 43가지 식물 씨앗들. 21세기 문익점노릇을 한 셈이다.
영국사람들은 자녀교육을 가드닝으로 시작한다. 정원의 식물들을 심고 가꾸며 심성을 수양하는 것이리.
남동생과 딸과 함께 유럽의 아름다운 메너하우스와 전원마을을 돌며 그들이 어떻게 정원을 가꾸고 꽃을 사랑하는지 눈여겨 보았다.
나는 슬픔에 대한 치유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사별의 아픔을 견뎌낸 것도 꽃과 여행으로 부터 받은 위안이었다.
인상파의 거장 모내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옮겨와서 죽을 때까지화가로 정원사로 살았다.
모네가 원 없이 호사취미를 발휘한 곳이 지베르니 정원이었다. 자포니즘(Japonism)에 매료되었던 그는 연못에 아치형 일본식 다리를 놓고 수련을 키웠다. 일본산 관목을 구해다 심고 온실을 만들기도 했다.
스스로 정원사가 되어 원예잡지를 구독하고 전문서적을 읽으며 꽃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꽃에 대한 그의 열정으로 정원은 해가 갈수록 아름다워졌다.
그는 꽃피는 계절이 오면 몸이 달았다. 지인들에게 꽃구경 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지베르니는 외국 방문객들의 성지가 되었다.
“그림과 꽃 이 외에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다.”
모네는 지베르니 정원을 소재로 약 5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중 40여 점이 대작이었다니 그가 얼마나 이 정원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내게 꽃은 힐링을 넘어 안티에이징
-윌리엄 모리스의 레드하우스 정원작업도구 창고.
-아름다움이 주는 위안과 치유는 웃음의 원천이다.
19세기에 값 싸고 조잡한 기계생산 공예품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술 공예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중세시대의 수공예 생산방식으로 복귀하는 것을 주장했다.
울리엄 모리스도 자신의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며 옷과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이 일상생활 속에 스며든 멋진 삶의 예술화를 꿈꾸었다. 들꽃을 소재로 벽지나 카페트 등 생활용품을 디자인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시를 썼으며, 모든 사람이 생활 속에서 예술을 창조하고 향유하면서 "희망차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 애썼다.
사실 모리스가 반대한 것은 영국 산업자본주의 체제를 통한 부의 축적 이었다.
20세기에 이르러 대량채취,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는 전 세계의 자연환경과 자원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지구환경 파괴로 이어졌다.
예술적 가치란 인간의 생명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모리스의 사상을 절감한다.
"예술이 낳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집이라고 답하리라. 그 다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하리라."
그는 말년에 코츠월드의 전원마을 켐스콧에서 책 만드는 일에 전념했고. 세계 3대 인쇄본의 하나로 꼽히는 초서집을 만들었다.
1896년 62세의 나이로 사망한 모리스의 죽음을 지켜 본 의사는 "윌리엄 모리스였다는 것이 사망원인이다. 그는 평생 열 사람의 몫을 살다갔다"고 말했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미 앞서간 사람들이 있으니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몸을 움직여 만드는 아름다움은 분명 여러 사람을 위한 행복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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