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 교원 연수원에서 <동화 세상 가을 세미나>가 열렸다.
일행들은 해설사를 앞세우고 아산 외암리 마을을 둘러 보기로 했다.
가을 걷이가 끝난 들녁의 허수아비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나무는 600백 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다섯명이 껴안을 만큼 몸피를 키웠다.
외암리 마을 사람들은 관광객들의 무례한 행동에 사생활 침해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국화 향에 흠뻑 취해 싯귀절을 떠올릴 지도........
아산 교원 연수원 세미나 실에서 <학교 선생님들이 이야기하는 요즘 아이들>이란 주제로 교직에 있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20기 김보숙 회원이 학사일정과 수업일수 시간표 등 학교생활 전반에 걸친 궁금증을 풀어주었는데,
2-3학년 아이들이 포르노와 담배에 노출 되었고 ADHD 아동들이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이야기 했다.
특수교사로 근무히는 24기 김혜옥 회원은 장애와 비장애 학생이 물리적 정서적으로 통합교육을 받기 위해 특수학급이 존재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가 심한 아동의 경우 교사부터 통합교육을 꺼린다고 했다.
19기 정현정사서는 초등학교 도서실 도서 구입비는 학교 운영비의 3-5프로에 해당하고, 필독서 1-5권,권장도서 1-2권은 도서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한다고 했다. 국립중안 도서관의 도서목록을 보고 선정하는 경우가 많고 수상작 위주로 구입한다고 했다.
저녁식사후에 2부 발제 < 상상력이 세상을 지배한다>
학부모인 후배들에게 쵸등교사 연수나 학부모 연수용 강의를 들려주었다.
미래학의 아버지 토마스 프레이에 의하면 2030년이면 일자리의 47%가 기계로 대체되고 20억개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한다.
20여년 후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 했다.
사람들은 3D 프린팅 의류를 입고, 3D 프린팅 주택에 살면서, 드론으로 택배를 받고, 로봇을 소유할 것이란다.
교육수준이 3배정도 높아지고, 성취 능력도 10배 증대된 사람들이 프리랜서로 일하고 무인자동차를 이용하게 된다니 엄청난 변화다.
기계가 대신 하지 못할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 생산력을 갖추는 것이 대안이다.
동문 친교타임. 젊은 청춘들은 온 몸을 불사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를 합창하며 마무리 했다.
다음날 아침 2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연수원 코 앞에 파라다이스 온천이 있었다.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오동나무 가로수길을 걸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예산 수덕사로 행했다
해설사가 입담이 좋은 해설사가 일엽스님. 나혜석과 이응노 화백의 인생이야기를 곁들였다.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고.
일엽스님이 출가해 삭발했다는 견성암, 환희대가 있다. 대중가요 ‘수덕사의 여승’이 일엽을 소재로 한 노래라는 설이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혼까지도 다 바치고 싶다”
베스트셀러 수필집 ‘청춘을 불사르고’의 저자, 일엽스님이 자신의 출가 이유에 대해 한 말이다.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신학문을 접했다. .
12세에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은 심정을 글로 옮겼으며 이것이 한국문학상 신시의 효시로 불리는 ‘동생의 죽음’이 됐다.
‘일엽’이라는 아호는 춘원 이광수가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사 지어 준 것이다.
그는 나혜석과 더불어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외치며 개화기 신여성운동을 주도했다.
일본 유학 후에 여성 운동을 전개하며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신여자’를 창간했다
일엽은 출가 전 일본 명문가 집안의 한 남자를 만나 아들을 낳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의 제자였던 그의 아들, 김태신이 14살에 처음으로 어머니 일엽을 찾아갔을 때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라고 한 말이 유명하다.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이 이혼, 아들의 죽음 ,스켄들, 궁핍의 고초를 겪으며 유학시절 친구 일엽스님을 찾아 출가의 뜻을 비쳤다.
입엽의 스승 만공스님의 만류로 입적하지 못한 나혜석은 수덕여관에서 3년에 머무르는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다.
192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신여성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견성암 주변은 그야말로 만추의 서정.
신여성들의 자유연애론도 저 단풍처럼 뜨겨웠을테지.
수덕여관과 이응로 화백의 인연
1930년대 후반 이곳에서 이응로는 나혜석으로부터 사사를 받고
이응로 는 수덕여관을 구입하여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고
이응로는 1960년대 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요양을 했다.
나혜석의 수제자 이응로는 스승의 그림과 자유로운 영혼같은 그녀의 삶을 동경했다고 한다.
본처와 자녀들을 두고 애첩과 함깨 훌쩍 파리로 떠났다.
수덕여관은 부인 박귀희 여사의 그리움과 회환의 한숨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파리에서 무명화가로 떠돌다가 신문 잡지 부스러기를 나무 판에 붙여 추상적인 콜라주 작품을 만들었다.
1965년에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명예 대상을 수상 했다.
그러나 6.25 당시 납북된 양아들을 만나기 위해 윤이상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게 화근이 되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파리로 귀환한 이응로 화백은
본부인이 있는 수덕여관으로 돌아와 요양을 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백건우와 윤정희부부 납치 미수 사건에 휘말려 국내활동을 금지당하고 파리에서 타계하였다.
그가 어찌 살다 갔는가
앞서간 이들이 인생살이 스승이다.
관광공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힌 공세리 성당.
수많은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알려진 공세리 성당 명칭은 조선시대 공세창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1895년 월드비즈 신부가 부임하면서 기와집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꾸몄고, 1899년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신자수가가 증가하자 1922년에 현재의 고딕 양식의 서양식 성당과 사제관을 직접 설계하고 완공하였다.
박물관이 된 사제관은 이층 현관의 층계참이 독특하면서 단아하다.
사제관의 창과 문에서 스테인드블럭을 볼 수있었다. 유럽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동문들과 보낸 시간도 의미있었지만 여행지에서 새롭게 보고 듣고 알게된 스토리들로 눈과 가슴이 호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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