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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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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반사

923회 러빙 빈센트

멀리 가는 향기 2018. 12. 23. 16:07

12월 15(토)  정선혜 교수의 딸 결혼식이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있었다.

늦게 도착한  탓에 4층으로 안내 되어 예식을 영상으로 보았다.

호텔 입구에서  <러빙 빈센트> 포스터를 보았기에  후배 고영미와  전시를 보았다.

고흐가 죽고 1년이 지난 어느날,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했던 우체부 조 대신, 

그의 아들 아르망이 빈센트의 마지막 편지를  테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아르망 (16세  소년의 얼굴이라기엔 ....)은

고흐가 말년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고흐가 죽기 전의  흔적을 더듬는다.



<러빙 빈센트>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우체부 조셉 룰랭, 고흐의 주치의 폴 가셰, 그의 딸 마르그리트 가셰, 고흐가 머물던 라부 여인숙 딸 아들린 라부 등 

고흐가 알고 지냈던 인물들. 

모델비를 감당할 수없던 고흐는 지인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아르망은 고흐가  타살당했다고 확신하고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증거를 찾아나선다.

(고흐 타살설은 2011년 전기 전문 작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와 스티븐 네이페가 자신들의 책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에서 고흐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평소 그를 괴롭히던 동네 청년 르네 세크레탕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야기는 고흐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엇갈린 증언으로 채워진다.


고흐에 대한 짧은 정보

생계를 위해 다작을 했으나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

고흐는 동생  테오의 격려로 독학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림을 사고 파는 화상이었던 테오는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고, 평생 후원자역할을 하였다




고흐의 그림은 강렬한 색감으로 보는 이를 그림 속으로 빨아들인다.

실제로 화가를 꿈꾸었던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감독은 말년의 영화 <꿈>(1990)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던 주인공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림의 배경이 된 장소를 돌아다니는 에피소드를 찍었다.


 <러빙 빈센트>는 세계 최초 유화 에니메이션 영화.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림 속에서 모델이 된 주변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죽음을 둘러 싼 미스테리를 다룬다.

12월에 재개봉 된다하니  미리 정보를 검색해두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과 닮은 배우들을 캐스팅 하여 영상을 찍고,

그것을 유화로 그려내는 작업을 거쳐 에니메이션 영화가 만들어


 러빙빈센트의 유화 애니메이션 작업은

20개국 출신  125명의 화가들이 장면 하나하나를 모사하여 영화로 제작 했다.
약 65000여 점의 프레임이 그려진  제작기간은 총 10년! 1초 짜리 에니메이션을 위해 2주가 걸린 것도 있단다.
그 중 2년은 오로지 채색을 하는 기간이었다고.



그림제작에 참여했던  화가가  그림을 모사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참여 작가들의 스타일과 원작을 비교 할 수있는 그림들.

영화 속 명장면들이 이어지고.



미디어 아트로 재현 된 <까마귀가 있는 밀밭>



자살이냐 타살이냐 ? 주변인물들의 증언을  조합 해봐도 아리송.

권총자살로 요절하기까지 기괴한  일화들은 그를 광인으로 몰아가면서 스타 화가 반열에 올려 놓았다. 



저자는

 테오로부터 더 이상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없다는 말을 듣고 자살을 택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뒷바라지 한 테오를 생각하면 자살은 꿈도 꾸지 못었을 것이라 말한다.


총상 분석 전문가인 빈센트 디 마이우 박사, 
 총 쏜사람에게 흔히 발견되는 화약 흔적이 고흐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자살하는 사람이 총을 배에 쏘는 일은 드물며 대부분 입 안이나 머리에 겨눈다는 점,

 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자살이 아니다. 


또한 편지를 많이 쓰던 고흐가 유서도 남기지 않고, 총상 후 집으로 돌아왔다는 등 의혹을 제시. 


하지만 총기 사고 후  치료를 포기한 것을 자살이라고 한다면 그는 분명 자살한 것이다.



차례 실연 ,  아버지와의 불화,  고갱과의 격력한 대립 이후, 자신의 귀를 잘라 정신 병원에 입원했던  일화.



 동료  파서로의 추천으로  정신과 의사 가세를  만나고  그의 추천으로  

파리 북쪽  오베르- 쉬르- 우아즈 마을에서  70여일을 보내는 동안 80여 점을 남긴 고흐.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걷던 그가 왕성하게 작업을 하던 10년 동안 ,900여점 유화와 2000여점의 습작을 남겼는데  

대표작은 생애 마지막 2년동안 아를과 오베르에서 그렸다.




- 가세 박사의 딸 마드모아젤 가세.


고흐가 마르그리트와 가깝게 지내자 가세 박사는 그를 차갑게 대했고  결국 자살의 동기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그린   들판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쏘고


이 계단을 올라 다락방에서  이틀만에 생의 고통을 끝낸 고흐

 


                                                                        37세 짧은 생을 마감한  라부 여인숙


                                 - 고흐와 테오의 무덤  


동생에게 전했다는  마지막 말,

자신은 아무것도 잘 하는 것이 없고, 죽는 것 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 Auguste Ren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