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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나들이

1072회 나무 인형의 비밀

멀리 가는 향기 2021. 8. 29. 08:16

 

                              나무 인형의 비밀  페루 마리오네트 / 역사 문화 박물관 6.6-8.29

 

16세기 후반 유럽에 인형극이 등장 했으며, 체코의 인형극은 18세기에 시작 되었다.

 

유랑 인형극단은 공연물품을 마차에 싣고 온 가족이 떠돌며 공연했다.

 

인형 조종자에게 인형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어서 전문 조각가가 만든 인형은 대물림 되었다.

인형 가격은 당시 노동자의 연봉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인형조종자들은 독창적인 기계를 만들어 효과음을 냈다.

 

공연 내용은 '이루어 질 수없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 '먼 나라 이야기,  상류층을 풍자하는 코믹이야기들이 인기가 있었다.

                             라디오와 티브이가 등장 하기전 가장용 인형극은 인기있는 놀이였다.

 

아시아, 유럽 등지의 마리오네트를  관람하고 수집도 했는데  체코 인형은 예술성과 작품성이 뛰어났다.

 

                                  능수능란한 조종자의 손놀림으로 공연 되는 피아노 연주자 인형

 

이날 아름이 아이폰은 7년 전 8월 24일 ,

프랑스 리옹의 기뇰 마리오네트 인형 박물관 사진을 떠올려 주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어떻게 같은 날자에 같은 동행과  마리오네트 관람을 하다니!

 

                                           박물관 근처  라바 카페.

                                        라바 신발을 신고 업된 아르미

                                                

동화 면세점 빌딩에 아버지 직장이,  조선 일보가 남동생 직장이여서 광화문은  추억이 많은 동네.

 

아름이는 모델 하우스 조경, 잡지 촬영용 꽃꽂이, 웨딩홀 리모델링이 목전의 일이라

아이디어  공유하고  식물 식재 조언을 해줬다.

 

                                  역사 박물관에서 딜쿠샤는 가까운 거리.

                                  서대문 사직터널 좌측 행촌동 언덕배기 권율 장군 집터 맞은 편에, 

                                       대한제국 시대에 지어진 근대 건축 딜쿠샤가 있다.

 2005년, 미국 노인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단서는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지명뿐.

 

   

                                     복원 전,  90여년간 영욕의 세월을 보낸  딜쿠샤

 

의뢰를 받은 김익상 교수는 의뢰인 브루스 티켈 테일러가 유년기를 보낸 집을 찾아낸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붉은 벽돌집은 오랫동안 주인이  밝혀지지 않아 흉가로 알려졌다.

 

우리가 방문한 날, 건물 전면의 축대 공사를 마치고 중앙 현관을 이용했다 한다.

 

 

앨버트는 광산개발자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무역업을 하던 중 외신기자 UPI통신사 특파원)로 활동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수탈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조선의 독립운동을 취재해서 서방에 알렸다.

 

배우 출신 메리(영국)가

'기쁜 마음의 궁전'을 꿈꾸며 'DILKUSHA 1923'을 그들의 집에 새겼다고 한다.

 

“러크나우에 갔을 때 나는 말을 타고서 폐허가 된 그 궁전을 찾아갔고, ‘딜쿠샤’가 힌디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언젠가 내게도 집이 생긴다면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이겠다고 마음먹었다.”

                                 - 메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 

 

 

앨버트가  광산기계를 구입하기 위해 일본에 머무는 동안 , 메리는 일본에서 순회공연 중이었다.

남동생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상심한 메리를 친구가  파티에 데려갔고  그곳에서  앨버트를 만났다.

앨버트는  인도로 순회 공연을 떠나는 메리에게  호박목걸이를 선물하며 찾아가겠노라 약속했다.

인도에서 재회한 그들은 봄베이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문에 실린 메리의 결혼 기사 

앨버트 부부의 유품들을 서울시에 기증한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사진 권종술 기자 

자서전 제목을 <호박목걸이>로 할 만큼 호박목걸이는 어린 시절부터 메리에게  의미있는 물건이었고,

남편 앨버트와의 만남의 고리가 되는 물건이기도 했다.

 

'호박 목걸이'

조선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뒤 추방 당하기 까지 그들 부부의 생활이 담겨있다.

 

아들 브루스의 자서전 '은행나무 옆 딜구샤'

 딜쿠샤에서의 어린 시절과 일제시대의 한국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서대문 충정로의 신혼집

한국 골통품에 매료된 앨버트는 조선호텔 부근에서  테일러 상회를 운영했는데  신혼 집을 골동품으로 꾸몄다. 

새색시 메리는 요강에 꽃을 꽃아 손님 초대 식사 데이블에 올려 놓았다고.

 

 

 

 

 

 

 

 

 

                1919년 2월 말, 메리는 첫 아이 출산을 위해 세브란스에 입원 했다.

병원에서 복사 된 독립선언서는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외국인인 메리 침대 밑에 숨겨졌다.

출산 소식에  달려 온 앨버트가  독립 선언서 발견.

 독림선언서를 갓 태어난 아들의 요람 밑에 숨겨 병원 밖으로 빼돌렸고

 구두 뒤축에 숨겨 외신을 통해 보도했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에 의해 테일러 부부가 강제 추방된 뒤 딜쿠샤는 일인들에 무단점유되었다.

 

복원 전, 나는 이 집의 실내를 촬영 했다.

테일러 가족이 추방된 후, 딜쿠샤는 해방과 6.25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이 집이 전쟁에도 파괴되지 않고 남은 것은 기적이다.

15세대가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쪽방촌이 되었다.

2018년 11월 마지막 세입자가 떠나고 복원 공사를 시작 했다.

1층 응접실.

 

메리의 어린 시절 영국 집 거실에는 유명인사들이 세계여행 중에 가져온 선물들이 전시 되았다. 

그 중에 조선에서 가져온 호박목걸이가 있었는데 메리가 목에 걸고 다녔다고 한다.

무엇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얼려진 보석 호박은 메리의 운명을 조선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2층 거실.

메리는 배우, 화가 ,작가로 활동한 재주많은 사람이다. 

명성황후가 외교사절 접대를 위해 서양복식을 입을 때  도왔을 정도로 영향력있는 사람이었다.

성공회 구락부에서 사교모임을 갖던  외국인들과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언더우드 등 선교사들이 이 집에 모였다.

 

딜쿠샤 집들이 때 메리의 친정 아버지는 진귀한 수집품을 선물했고, 메리는 영국에서 인테리어 용품들을 사들였다.

메리가 심혈을 기울여 꾸민 집은 영국풍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복원된 이 집의 전시 물품들은  서로 겉돌 뿐이다.  1920년대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우선 텍스타일 디자인부터 벽의 페인팅과 어울리지 않아 거슬린다.

 

메리가 작성한 딜쿠샤 내부사진 설명서는 그녀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딜쿠샤를 꾸몄을지 드러난다.

 

메리는 특히 2층 거실을 꾸미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골동품점이나  여행을 하며 수집해온 물건들이 전시된 일종의 박물관 같은 곳이다. 유럽의 은제품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장식품들이었다.

거실 동편에 앨버트 서재, 서편에 매리의 화실이 있다.

 

앨버트 서재. 

 

“브루스는 학살 행위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을 확인하고 취재하러 수원과 전주 두 도시를 다녀왔노라고 말했다. 낮에 영국 영사와 미국 영사를 대동하고 내려가 마을 전체가 불타버린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모두 불러모아 교회 안에 가두고 창문을 통해 총을 쏘아 사살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 메리 린리 테일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 中

 

알버트는 서재에서 외국인 선교사, 사업가들과  정세를 논의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에 의해 감옥에 갇혔고 메리도 딜쿠샤에 연금 되었다.

골통품 수집에 안목이 있던 사람이라  서재에 물건들이 그득했다고 한다.

 

수감생활 끝에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강제추방 당했다.

                                                                   테일러 부부의 추방경로 

 

 한국 해방 이후 미군 통역사 등 다양한 자리에 한국어 능력을 알리며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지만,

건강이 악화되었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는 농담처럼  “메리가 납으로 된 작은 상자에 나를 담아 데려다줄 때까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요.” 라고 했는데  현실이되었다. 

메리는 알버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을  양화진에 묻었다.

메리 회실,

 

메리는 감성적인 사람이고 순회 공연으로 해외 여행이 잦아 안목이 높은 사람이다.

그녀는 김주사 공서방 등 하인들을스케치 했다. 

붉은 옷을 입은 김주사는 테일러 상회 직원. 고종의 통역관으로 일했으나 나라를 빼앗긴 후 몰래 독립운동을 도왔다.
앨버트는 그런 김주사를 지지했고 존경했다. 

테일러 가문의 광산, 금강산등을 여행하며 사람들과 풍경을 스케치 했다.

손녀 제니퍼에 의해  서울시에 기증 된 그녀의 유물들 

 

메리의 자서전에서 딜쿠샤에서 남산이 보이고 한강에서 스케이트 타는 모습도 볼 수있었다 한다.

앨버트가 구금 되었을 때 가택 연금 상태의 메리는 테라스에서 망원경으로 서대문 형무소 쪽을 살폈다.

어느 날 건물 밖으로 나온 사람들 숫자를 세어 보고 앨버트 일행을 확인 그녀는 쿠션을  흔들어 댔다.

메리가 쿠션을 떨어트렸을 때 앨버트는 그녀가 투신 한 것으로 착각한 마음 아픈 사연도.

나는 이곳에서 일제 감정기 앨버트와 메리의 경성살이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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