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로 인형이 배달 되었다.
김향이 작가님께
안녕하셔요? 저는 두 딸을 키우는 주부입니다.
작년 겨울 저희 친정어머니께서 손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서 선물해주신
<꿈꾸는 인형의집> 동화를 통해서 작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도 인형도 아름다웠지만 저는 그런 아름다움을 가꾸시는 작가님의 삶이
더욱 감동적이고 멋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 저희 딸아이 방을 정리하다가 해묵은 인형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딸이 태어나던 2000년 여름 친정어머니께서 유럽 성지 순례를 다녀오시면서 사오신 인형입니다.
제가 어린시절 꿈꾸던 너무나 아름다운 인형이었지만
한 살과 두 살이던 저희 어린 딸에게는 여늬 장난감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인형이 제법 망가진 다음에야 아차싶어서 손이 잘 닫지 않는 곳에 보관했지만
이미 상처 입은 인형의 모습은 복원되지 않더군요.
긴 세월 높은 책장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인형을 이제는 버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인형의 마음이 제게 닿았는지 인형을 잡는 순간 작가님 생각이 났습니다.
작가님 이사라면 이름없이 쓸쓸히 서있는 저희 인형들에게 새 생명도 주시고
따뜻한 보금자리도 주실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미리 양해도 구하지도 않고 두 아이들을 보내드리는 제 무례를 용서 하시길 바랍니다.
손호중 드림.
무례라니! 고맙기만 한데.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내게 보내준 것은 백번 잘 한 일이다.
우리 집에 있는 인형 대부분은 내가 만든 것과 지인들이 여행지에서 선물로 사 온 아이 빼고는 거의가 버림받은 인형들이다.
해외 벼룩시장을 100년 넘게 전전했던 아이,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아이, 몽골 모래밭에서 주워 온 아이.....
애지중지 사랑을 받다가 헌신짝 처럼 버려지는 슬픔을 내가 보듬어 안아주기로 한 것이다.
이 녀석들도 택배로 배달 되었던 새 식구다.
러시아 아가씨와 아프리카 민속 인형이 우리 집에 오게 된 사연이 걸작이다.
동화작가 길지연씨가 "김향이 선생님 드리려고 인형을 모았어요. 하자,
L선생이 "나도 인형 좋아해 . 사진 찍어 보내 봐." 했더랍니다.
핸 폰 사진을 본 L 선생이 인형이 맘에 든다 했고 인형들은 L 선생 집으로 건너 갔답니다.
L선생 집에는 딸내미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들이 피아노 위에 졸로리 있는데
그애들과 구색을 맞추려니 어째 어울리지 않더랍니다.
"길지연, 미안하게 됐는데 도로 김향이씨한테 보내야겠다."
L 선생이 여차저차 해서 내게 인형을 부쳤노라고 전화를 하셨다.
나는 재미난 사연을 데리고 인형들이 우리 집에 왔으니 더 좋다고 했다.
길지연씨는 노환으로 쓰러지신 할머니와 19년 된 애견 찡코 수발 드느라 체중이 빠졌단다.
그뿐 아니다 그녀는 대단한 동물애호가라 길고양이 밥까지 챙겨주느라 집을 못 비울 정도다.
그녀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찡코는 당뇨 때문에 인슐린 주사를 하루 두 번 맞춰주어야 하고
이빨이 없어 북어 죽을 끓여줘야 한단다.
나도애견을 17년 동안 거둔적이 있지만 사랑이 아니면 진작 포기 했을 일이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사연을 몰고온 인형들로 우리 집은 늘 이야기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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