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인형의 집 121

613호 Boudoir 인형

Boudoir (여인의 침실)인형은 프랑스 여인들이 침대나 쇼파에 놓아두는 인테리어 소품용 인형이다. 브르두와 인형은 대부분 비대칭으로 팔다리가 길고 메이크업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에스토니아 카드리오그 궁전에서 Boudoir 인형을 안아보았다. 어느 날 문득 그 인형이 눈에 삼삼해서 길쭉하고 늘씬한 몸부터 만들었다. 속고쟁이와 속치마도 만들어 입히고 얼굴 이목구비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다. 머리카락을 붙이고, 양식 쌀알 진주로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어 주고 손톱에 메니큐어도 칠해주었다. 뒷태도 신경 써서 리본으로 여며주고. 수직실크 자투리 천으로 드레스를 만들고. 조화로 화관도 만들었다. 베이지 톤의 수수한 평상복 올리브 그린 원피스 하나 더. 에이프런에 수를 놓고 대바늘 뜨게 소품도 만들어 주고 ..

인형의 집 2015.01.27

485회 하프돌 스텐드와 핀 쿳션

하프돌 램프는 하프돌로 만든 램프 쉐이드를 말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하프 돌(Half Doll) 의 본래 명칭은 Porcelain half doll 로 자기로 되어있는 상반신 인형을 말한다. 하프돌의 하반신을 19세기 복장으로 제현하고 그 당시의 엔틱 레이스와 실크천, 리본, 비즈 , 조화등을 이용하여 쉐이드로 만드는 작업이다. 오로지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램프 쉐이드를 통해 퍼지는 은은한 조명이 클래식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18세기 유럽의 귀부인들이 재봉기술을 배우는 취미생활이었으며, 고급스럽고 우아한 규방소품으로 사랑을 받았다. 19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많은 하프돌들은 독일의 Dressel & Kister, Goebel과 Heubach ,이탈리아의 카포디몬테 ,헝가리 헤렌드등에 의해..

인형의 집 2013.12.04

476회 고물 인형들의 변신 스토리

1950년대 속옷차림의 고무 인형 속치마를 만들어 입히고 이제 세례복을 만드는 중 세례복을 만든 옷감은 김혜경 사장님 어머니 반닫이서 나온 명주. 은은한 광택과 실크천의 부드러운 감촉으로 바느질하는 손이 즐겁다. 파리 방브 벼룩시장에서 사온 100년이 넘은 프렌치 엔틱 레이스를 사용했다. 100년 넘은 프렌치 레이스들은 귀하신 몸이라 부르는 게 값이다. 그때 눈에 뜨이는대로 사올 걸 .....후회 막급이다. 임정진하고 둘이 무슨 심사를 할 때 그녀가 입고온 브라우스 레이스가 나이 먹은 빈티지였다. 자잘한 무늬여서 인형옷에 트리밈으로 쓰면 안성 맞춤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저번에 입었던 브라우스 싫증나면 버리지 말고 나 줘라 인형 옷 만들게 했다가 한소리 들었다. "세상에, 사람옷 뺏어서 인형 옷 만들어 준..

인형의 집 2013.11.10

468회 1920년대 신랑신부 인형

근현대사 자료 수집가 K씨가 조선인형 사진을 보내왔다. 그 사진 속에 평소 내가 수집하고 싶었던 '조바위 쓴 소녀 인형'이 있었다. 그뿐 만 아니다. 그가 국보급이라며 침이 마르게 자랑한 신랑신부 인형은 혼례복을 제대로 갖춰 입힌 예술품이었다. 그가 미국인 골동품상을 조르고 졸라 입수한 신랑신부는 잘 보존이 되어서 옷감이 삭거나 훼손 된 곳이 적다고 했다. 미국인 골동품상이 다른 딜러에게 판매했다는 인형도 사진으로나마 감상할 수있었는데, 조부모를 비롯한 삼대가 모인 대가족 인형이었는데 일본 풍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조선인형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는 인형을 주술적 용도나 부장품,액막이로 사용해왔기에 집안에 들이면 안되는 께름칙한 물건이었다. 구한말 개화기에 선교사들과 외교사절단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관광상품..

인형의 집 2013.10.11

457회 조바위 쓴 새 색씨

근현대사 자료 수집가 K씨가 보내준 사진 인형은 부산박물관에서 만든 도록 표지에 실린 인형과 얼굴 모습이 같았다. 옆에있는 인형들은 일본 석고 인형 얼굴에 한복을 입힌 그야말로 퓨전인형이고, 조바위 쓴 인형은 조선인형이다. 조바위쓴 새색씨 인형은 1920년대 , 석고 인형은 1930년 때로 구분하면 되겠다. 민간에서 녹의홍상에 족두리 쓰고 하얀 한삼을 맞잡은 손에 두르고 혼례를 치르기도 했다. 연두저고리 다홍치마는 혼례날 부터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입었다, 자주 고름은 남편이 살아있음을 의미하고 , 자줏빛 깃은 부모가 살아계시다는 의미였다. 저고리 소매에 남색 끝동은 아들을 낳은 여인만 달 수있었다. 조선 후기의 저고리 길이는 가슴께까지 짧아졌으며 품은 몸에 꼭 맞고 소매통은 좁아졌고 흰 치마 말기가 ..

인형의 집 201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