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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시

하늘에 있는 임

멀리 가는 향기 2020. 12. 21. 12:21

하늘에 있는 임

 

 

 

 

우리 부부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미망의 세월을 산다.

 

 

 

 

 스무 살에 만나 스물일곱에 부부 연을 맺고

아들 딸 낳아 기르며 스물아홉 번의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발리에서 결혼 기념일을 보내며 두 달 뒤에 닥쳐올 불행은 까맣게 모른  채 행복했다.

 

병원 출입 모르던 남편이 악성림프종 판정을 받았을 때

연극을 했다.

가벼운 뇌경색이 왔을 뿐 금방 나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모든 불상사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고

이왕 닥친 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헤쳐 나갈 일이며.

나이들면 겪을 일 좀더 기운 있을 때 겪으니 낫다고 생각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간병 일지를 쓰고 암에 좋다는 음식을 먹였다.

 

 

 

먹이고 씻기고 옷 갈아입히며 기꺼이 그의 어머니가 되었고

그는 갓난아기처럼 품에 안겼다.

원폭투하 같다는 항암치료는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공격을 했으며

우리는 살아남아 무용담을 이야기 하자고 무진 애를 썼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바닥이 얇아지고 발등이 소나무 껍질처럼 벗겨지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가족과 지인들이 곁에 있어 견딜 수 있었다.

말 수없는 그가 가족의 사랑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고

내 어깨를 끌어안고 사랑한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둘이 함께 빌고 찬송하며 평안을 얻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수와 동행 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병원에 있는 동안 우리, 함께 눈 뜨고 함께 잠자리에 들며

서로 애련히 여기며 아끼고 사랑했다.

아파할 때 곁에서 함께 아프고 기뻐할 때 곁에서 함께 기뻐한 일은

모진 세상  견디어 낼 힘이 되겠지.

 

 

징역살이나 다름없는 투병 중에 보름간의 꿈같은 시간을 가졌다.

아들 졸업전시회 구경하면서 자기보다 더 큰 아들의 속내를 읽고 ,

겨울 칼바람 맞으며 종로3가까지 걸어가 영화도 보았고

음악회도 가고 드라이브도 하면서 병원 냄새 맡지 않아 좋다고 했다.

 

 

 

 

다시 입원 했을 때 그는 개선장군이나 다름없었다.

콧노래 부르고 농담하면서 병실 사람들을 웃기고,

아내를 이쁜이라 부르며 팔불출 노릇도 했다.

 

 

 

MRI, PET,CT 를 통한 중간 검사 결과 암세포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야말로 감격시대였다.

마지막 3차 항암 치료를 견뎌 낼 버팀목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퇴원하면 산으로 들어가 그림 그리고 글 쓰며 조용히 살자 했다.

산 속에 지을 그림 같은 집을 설계하며 통증을 견뎌냈다.

 

아내의 생일을 집에서 보내고 싶다고 2박 3일 휴가를 받고

다가 올 크리스마스를 고대하며 어린아이처럼 들떠있었다.

 

 

 

 

 

 

3차 항암을 시작하고  식욕이 떨어지더니

장운동이 안 되서 가스가 차고 복수가 차고

폐에 물이 차 숨이 가쁘다고했다.

 

 

 

 

 아내의 생일 선물로 손가락에 반짝이 불을 켰다며 'ET'놀이를 하자고 했다.

혈압계차고, 코줄 끼고 , 심전도 기계 주렁주렁 달고서.

내 생일 날 밤 찍은 이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를 데려가셨는지.

착한 사람이라 험한 세상 살아 내기 힘겨워 데려가셨다고 했다.

 

 

아직도 그 사람 내 가슴 속에 또렷하고

지금도 그 목소리 내 귓전에 생생한데

우리는 몸과 마음이 한 몸으로 살았는데

이제 하나가 아닌 둘이 되었다.

 


영영 이별이다.

나를 버리고 가신 님 십리도 못가 발병 났으면 좋겠다.

울고, 울고 또 울어도 그 사람 발길은 못 잡았다.

 

(1952.5.1- 2006.12.22)

 

평안이 눈 감은 그의 귓전에 대고 약속 했다.

그 사람 몫까지 부모노릇하고 내 소명 다하는 날

구만리 장천 찾아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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