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호 끼니마다 엄마는 끼니마다 엄마는 저녁 밥상에 식구들을 불러 들였다. 짭짤한 젓갈을 좋아하는 할머니, 호박된장국을 좋아하는 아버지, 가지구이를 좋아하는 아들, 고들빼기 김치를 좋아하는 딸, 깻잎 장아찌를 좋아하는 막내. 엄마는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불러들이듯 품을 떠난 식구들을 끼니 때마다 .. 내 마음의시 2018.10.21
꿈 속의 사랑 꿈에 본 그는 늘 말이 없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빙긋이 웃거나 어깨를 내어 줄 뿐인데도 다정하다. 그가 홀연히 다녀가고 나면 첫눈 녹듯 가슴이 시리다. 굳이 찾아와 흔들어 놓고 갈 바엔 그저 먼 빚으로 내려다 보시지. 내 마음의시 2018.09.28
풀무덤 풀무덤 잡초로 나고싶어 낫겠는가마는 밭고랑 오가는 길에 밟아뭉개고, 호미날로 파내고, 땡볕에 내던져 참시를 한다. 뽑고 돌아서면 우후죽순 돋아나는 풀들을 당할 재간이 없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이다. 오뉴월 염천에 잡초와 진검승부하려는 나도 징하다. 처절하게 생을 마친 풀들을 .. 내 마음의시 2017.05.24
789회 삶이 팍팍한 그대에게 삶이 팍팍하다고 주저 앉은 그대 저물어가는 가을 들녁을 걸어보시길 그대 마음이 강물처럼 고요해지거든 옷자락 움켜잡고 따라 온 도깨비바늘을 눈여겨 보기를. 그것이 얼마나 단단히 끈질기게 삶을 욺켜 쥐었는지 알게 되리니 내 마음의시 2016.11.28
726호 곱게 나이 먹어야 하는 이유 곱게 나이 먹어야 하는 이유 꿈에 길을 찾아 헤매다 전화를 받았다. "당신은 거기 있어. 내가 찾아갈테니." 생시와 똑같은 남편 목소리에 놀라 깼다. 날이 새면 기일이라 때맞춰 찾아온 것이리. 부처님 오신 날 나고 예수 나신 날이 장례일이 되었으니 이 세상 나들이를 오지게도 표시해놨다. 쉰 다섯 한창 나이로 영원이 살 사람 내가 그 사람 찾아 저 세상 가면 동갑내기 부부가 연상연하 커플이 되겠구나. 나이 차이가 너무 나 날 못 알아보면 어쩌나? 곱게 나이 먹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 내 마음의시 2015.12.22
713호 은행잎 편지 은행잎 편지 등 뒤에서 눈 가리고 까꿍놀이 하듯 은행잎 한 장 떨어트렸다. 장난기 섞인 그의 안부. 글자 한자 없어도 알겠다. 하늘과 땅 아무리 멀어도 우리 마음은 지척. 내 마음의시 2015.11.25
670호 수제비 일정시대, 광복이후 사용하던 사기 밥그릇. 그릇의 주둥이와 몸통에 초록색 띠를 둘러 장식했으며 정면에 장수를 나타내는 목숨 수(壽)를 새겼다. 굽은 그다지 높지 않아 안정감을 준다. 이 밥그릇에 흰 쌀밥을 고봉으로 얹어 먹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왜사기 밥 그릇을 국.. 내 마음의시 2015.06.24
어느 날 갑자기 밤 늦은 귀갓길 술꾼의 역주행 차량에 갓 마흔 가장이 목숨을 잃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닐수 없다. 졸지에 자식 잃은 에미 속은 숯검정이 되었고 지아비 잃은 젊은 아내는 넉이 나갔다. "아직은 아빠가 필요헤요 아빠 보고싶어요." 여덟살 철부지는 울다 잠들었고 둘째는 문상객들 속에서 희낙락. 기저귀 찬 막내는 꿈을 꾸는가 방싯 웃는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말은 이리도 잔인하다. 창졸간에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난 영혼은 억장이 무너졌겠지. 낮달로 뜨고 별이 되고 바람으로 남아서라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남은 식솔들 지켜다오. 내 친구 큰 아들 김동준의 명복을 빌며. 2015년 6월 내 마음의시 2015.06.10
638호 눈이불 눈이불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러대면 하나님도 속이 시끄럽다. 그런 날 하나님은 새하얀 눈이불을 덮어 넌지시 일러주신다. "남루하고 아픈 기억은 덮어라. 그래야 덜 춥다." 내 마음의시 2015.03.12